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빈센트 지간테 (문단 편집) == 여담 == * 빈센트 지간테의 서명은 2개의 X자를 휘갈긴 모양이었다. * 빈센트 지간테의 한창때 체중은 약 104kg 정도였다. * 법망을 피하기 위해 정신질환자 행세를 한 빈센트 지간테의 이야기는 영화 [[애널라이즈 댓]] 속 마피아 두목 폴 비티 캐릭터, 드라마 [[Law&Order]] 속 마피아 두목 알베르토 나폴리 캐릭터, 드라마 [[소프라노스]] 속 마피아 두목 코라도 소프라노 캐릭터 등 여러 [[할리우드]] 작품에 영감을 제공했다.[* 시즌 2 시점의 소프라노는 현실 속 지간테처럼 재판 방어 차원에서 있지도 않은 정신질환을 가장하지만 시즌 4에 이르러 법원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뒤 급격한 [[치매]] 증세를 보이며 본격적으로 [[개그 캐릭터]]가 된다.] * 빈센트 지간테는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의 삶을 다룬 1998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3785|위트니스 맙]]에서 니콜라스 케프로스가,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삶을 다룬 2018년 영화 [[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m&sm=mtb_etc&mra=bkEw&x_csa=%7B%22isOpen%22%3Atrue%7D&pkid=68&os=5482795&qvt=0&query=고티%20정보|고티]]에서 살 렌디노가, 2019년 영화 [[https://m.imdb.com/title/tt8722440/|맙 타운]]에서 닉 코데로가, 흑인 범죄조직 두목 [[:파일:범피 존슨.jpg|범피 존슨]]의 삶을 다룬 2019년 드라마 [[https://www.imdb.com/title/tt8080122/|갓파더 오브 할렘]]에서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시카고 마약왕 제임스 킨의 삶을 다룬 2022년 드라마 [[블랙 버드]]에서 토니 아멘돌라가 각각 연기했다.[* [[블랙 버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문서 하단 제임스 킨 문단 참고.] [*갓파더_오브_할렘 갓파더 오브 할렘은 주인공 존슨과 [[프랭크 코스텔로]]를 우호관계로 묘사하는 데 비해, 존슨과 지간테는 적대관계로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론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불화도 없었다. 오히려 존슨은 모든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두루두루 가까운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였다. 정부 측 증인이 된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드라마 내용의 90%가 허구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상 인터뷰를 통해 일부 예외 사례가 존재하긴 하지만 모든 마피아 패밀리는 정규조직원(Made Member)의 직접적인 마약 거래를 금지하며 지간테가 마약 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드라마 속 설정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https://youtu.be/8Nsjn_TKXBY|#]]] [[https://youtu.be/ryxSmPu6fV4|영화 고티 속 지간테-고티 담판 장면.]] [[:파일:1FAA3427-5A0A-438E-8CC7-32B1599DF16D.gif|드라마 갓파더 오브 할렘 속 지간테가 상대방을 권총으로 살해하는 장면(gif).]] [[:파일:블랙 버드 빈센트 지간테.webp|드라마 블랙 버드 속 연방교도소에 복역 중인 지간테.]] * [[퓰리처상]] 수상자 지미 브레슬린의 2001년 소설 [[https://www.amazon.com/Dont-Want-Go-Jail-Novel/dp/0316120324|감옥에 가고 싶지 않아]]의 주인공 파우스티 델라카바는 빈센트 지간테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 빈센트 지간테는 게임 [[Grand Theft Auto IV]]에 등장하는 리버티 시티 마피아 조직 감베티 패밀리의 두목 [[Grand Theft Auto IV/등장인물|존 그라벨리]] 캐릭터의 [[모티브]] 중 하나로 추정된다.[* 작중 그라벨리가 자신의 창문 사업을 언급하는 대사가 있기 때문.] * 빈센트 지간테는 [[우-탱 클랜]] 소속 미국 래퍼 [[고스트페이스 킬라]]가 2006년에 발표한 노래 [[https://youtu.be/dQMwPd7H3-g|Alex (Stolen Script)]]에서 I gotta ill Gotti-Gigante connect.(난 고티와 지간테를 잘 알지.)"라는 가사로 언급된다. * 빈센트 지간테가 자주 입은 검은색 벨루어 소재의 [[목욕 가운]]은 [[라스베이거스]]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d/Golden_Nugget_Las_Vegas.jpg|골든 너겟 호텔 & 카지노]] 객실에서 가져온 것이다. * 빈센트 지간테는 운전기사가 모는 2세대 검은색 [[링컨 타운카]]를 타고 다녔다. [[:파일:Gigante in the back seat.jpg|자동차 뒷좌석에 앉아있는 지간테의 모습.]] * 빈센트 지간테는 [[뉴욕 시]] [[맨해튼]]에 위치한 유명 레스토랑 [[https://www.ilmulino.com/uptown|일 물리노(Il Mulino)]]의 단골이었다. 이곳은 2009년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만찬을 즐긴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일 물리노의 원래 주인들은 상표명과 함께 레스토랑을 팔았다. 일 물리노의 새로운 주인들은 본점을 포함해 10개가 넘는 가맹을 보유한 레스토랑 체인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한편, 빈센트 지간테의 조카 루이스 지간테는 [[뉴욕 주]] 웨체스터에 위치한 [[https://www.mulinosny.com/|물리노스(Mulino's)]]라는 레스토랑의 주인이다. 이곳은 상술한 일 물리노와 이름만 유사할 뿐 아무 관계가 없다. 지간테 가문에서 운영하는 물리노스는 운치 있는 폭포를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유명하고 시장, 주 상원의원, 주 대법관 등 지역 내 정관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루이스 지간테는 [[https://www.giganterestaurant.com/|지간테 레스토랑 & 바(Gigante Restaurant & Bar)]]라는 레스토랑 역시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의 요리를 책임지는 [[셰프]]가 [[한국계 미국인]] 사무엘 킴(Samuel Kim)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1월에는 빈센트 지간테의 후계자 [[리보리오 벨로모]]가 자신의 생일을 맞아 지간테 레스토랑 & 바에서 제노비스 패밀리 고위 간부들과 회동을 가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 빈센트 지간테를 배출한 제노비스 패밀리 그리니치 빌리지 지부는 그가 두목이 된 1980년대 이후 명실상부 패밀리 내 최대 계파가 되었다. 일찍이 빈센트 지간테는 패밀리 수뇌부에 진입한 뒤 자신의 후임 지부장으로 [[https://i.pinimg.com/originals/c6/7e/fb/c67efbbe8859d139fd4e4927c2baf44d.jpg|도미닉 칸테리노]]를 지명했는데, 1990년에 칸테리노가 사망하자 그리니치 빌리지 지부는 각각 [[:파일:Mario Gigante.jpg|마리오 지간테]], [[도미닉 시릴로]], [[:파일:Lawrence Dentico.jpg|로렌스 덴티코]], [[:파일:Prisco_headshot.png|안젤로 프리스코]]가 이끄는 4개의 지부로 분할되었다. 이후 전통의 116번가 지부가 다시 제노비스 패밀리 내 최대 계파가 된다. [*116번가_지부 제노비스 패밀리 116번가 지부는 빈센트 지간테의 전임 두목 [[:파일:Philip Lombardo.jpg|필립 롬바르도]], 빈센트 지간테 휘하에서 거리 책임자(Street Boss)를 역임한 [[앤서니 살레르노]], 빈센트 지간테 휘하에서 부두목을 역임한 [[https://i.pinimg.com/originals/58/9a/13/589a139c2f31ddf14880217896730547.jpg|사베리오 산토라(Saverio Santora)]], 빈센트 지간테의 후임 두목 [[리보리오 벨로모]] 등을 배출한 실세 집단이다.] * 빈센트 지간테는 두 집 살림을 했다. 아내 [[https://www.gettyimages.in/detail/news-photo/olympia-gigante-wife-of-vincent-gigante-at-the-criminal-news-photo/170751822|올림피아 지간테]]와는 [[:파일:Andrew Gigante.jpg|앤드루 지간테]], 살바토레 지간테, 욜란다 지간테, 로젠 지간테, 리타 지간테까지 총 2남 3녀를 두었고 뉴저지 주에 위치한 교외 주택에 거주했다. [[https://virtualglobetrotting.com/map/mob-boss-vincent-gigantes-house-former/view/google/|빈센트 지간테 교외 주택의 모습.]] [[:파일:Gigante Wedding.jpg|지간테 부부의 결혼식 모습.]] [[https://i.pinimg.com/originals/78/c7/0b/78c70b5ea86dec8948226960abf1a59c.jpg|1970년대 지간테 부부의 모습.]] 애인 올림피아 에스포지토와는 [[:파일:A2B992E2-4CCB-433A-8E4C-CD0A69C0312D.jpg|빈센트 에스포지토]], 루시아 에스포지토, 카멜라 에스포지토까지 총 1남 2녀를 두었고 뉴욕 시에 위치한 (2018년 기준) 1200만 달러 상당의 고급 연립주택에 거주했다. [[:파일:지간테 집.jpg|빈센트 지간테 연립주택의 모습.]][* 공교롭게도 빈센트 지간테의 아내와 애인의 이름이 모두 올림피아로 똑같다. 의도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가 아내와 애인의 이름을 혼동하여 잘못 부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빈센트 지간테의 [[전기물|전기]]를 쓴 뉴욕 데일리뉴스 기자 출신의 마피아 전문가 래리 맥셰인은,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조직원의 두 집 살림을 금지하지만 빈센트 지간테에겐 그러한 규율이 적용되지 않았고 이는 그가 누린 권력과 암흑가에서 받은 존경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말했다. 특히 빈센트 지간테와 애인이 함께 거주한 연립주택은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은 뉴욕 시내 최고의 부촌이자 미국의 상류층과 유명 인사들이 대거 거주하는 곳이며 드라마 [[가십걸]]과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요 배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퍼이스트사이드는 [[이방카 트럼프]]가 졸업한 채핀 스쿨(Chapin School)이 소재한 지역이며 [[캘리포니아 주]]의 부촌 [[베벌리힐스]] 보다 땅값이 더 비싼 지역으로 파악된다.] 1983년 연예기획사 사장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a/Morris_Levy%2C_at_the_Roulette_office.jpg|모리스 레비]]가 49만 달러에 연립주택을 구입한 후 이유는 불명이나 빈센트 지간테의 애인에게 단 돈 1만 6천 달러에 기증했다. [*모리스_레비 제노비스 패밀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지적된 레비는 [[루이 암스트롱]] 같은 전설적인 가수, 90개 이상의 회사, 9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인물로 1986년 시점에 그가 보유하고 있던 사업체와 판권의 가치가 도합 2200만~5500만 달러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레비는 [[척 베리]]의 가사를 인용한 [[비틀즈]]의 명곡 [[Come Together]]를 문제 삼아 [[존 레논]]으로 하여금 [[Rock 'n' Roll]] 앨범을 발매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를 가리켜 [[빌보드]]지에선 연예업계에서 가장 논란이 많고 화려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버라이어티지에선 광범위한 산업 통제력을 일컬어 문어(The Octopus)로, 올뮤직 가이드에선 예술가들에게 로열티를 사취한 악명 높은 사기꾼으로 각각 묘사했다. 훗날 [[연방수사국|FBI]]의 연예산업 내 조직범죄의 역할에 대한 수사 대상이 된 레비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사업체와 판권의 대부분을 [[EMI]]나 [[유니버설 뮤직 그룹]] 등에 매각했고 이후 유죄판결을 받지만 교도소에 수감되기 약 2개월 전인 1990년 5월에 사망한다.] 여기에 빈센트 지간테는 어머니가 거주하는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의 오래된 아파트에도 자주 머물렀다. [[:파일:Gigante familys house.jpg|빈센트 지간테 아파트의 모습.]] 사실 그의 어린 시절을 포함해 성인이 된 뒤에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바로 이곳인데, 1995년 뉴욕지(New York Magazine)는 허름한 아파트의 외관을 찍은 뒤 「정말로 이 저층 아파트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피아 두목의 집인가?」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원 조셉 부오난노는 동업자로 위장한 [[연방수사국|FBI]] 측 정보원에게 빈센트 지간테가 연예기획사 사장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a/Morris_Levy%2C_at_the_Roulette_office.jpg|모리스 레비]]의 사업을 어떻게 지배하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레비는 여러 차례 제노비스 패밀리와의 관계를 끊으려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했다고 한다. 당시 부오난노는 마피아-레비 관계의 끝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1980년에 레비의 최측근 인사인 네이선 맥칼라가 정부 측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제노비스 패밀리에 의해 살해되었다. 자신의 오른팔이 살해되는 모습을 본 레비는 끝내 마피아를 거스를 수 없었다.] 여기에 부오난노는 지간테가 [[문맹]]이며 이탈리아 혈통이 아닌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간테가 노트에 글씨를 써가며 부하들과 의사소통을 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가 문맹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지간테가 정신질환자 연기의 연장선상으로 자신이 문맹이라는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트렸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간테가 글을 쓰거나 읽을 줄 안다고 시인했다는 교정당국의 기록이 존재한다.] * 1970년대 초반 연예업계 주도권을 놓고 제노비스 패밀리와 감비노 패밀리 간 항쟁이 발발하여 연예업계 관계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늘어나자 빈센트 지간테와 연관된 연예기획사 사장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a/Morris_Levy%2C_at_the_Roulette_office.jpg|모리스 레비]]는 산하에 있던 가수들에게 혹시 범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뉴욕]]을 떠나 마피아의 손이 닿지 않는 안전한 지역으로 잠시 피신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레비의 조언을 받아들인 가수 중에는 토미 제임스가 있었다. 그는 한적한 [[테네시 주]] [[내슈빌]]로 피신했는데, 거기서 만난 지역 내 [[컨트리]]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얻은 경험이 훗날 [[컨트리 록]] 앨범을 내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훗날 제임스는 마피아 등 과거 연예업계와 관련 있는 인물들이 모두 사망한 2010년에 [[https://www.amazon.com/Me-Mob-Music-Helluva-Shondells/dp/1439172889|나, 마피아, 그리고 음악:토미 제임스 & 더 숀델스와 함께 하는 헬루바 라이드]]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한다. * 빈센트 지간테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행동대원이었던 시절부터 두 마리의 [[저먼 셰퍼드]]를 키웠다. 그중 불릿이라는 이름의 개는 사람을 공격하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결국 세 번이나 행인을 습격하는 사건을 일으키자 당국으로부터 안락사를 당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에 지간테는 당대 최고의 변호사 중 하나인 [[https://www.loeb.com/en/people/s/slotnick-barry-i|배리 스롤트닉]]을 찾아가 그를 변호인으로 선임하며 만약 자신의 개를 풀어주지 못하면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스롤트닉은 "안심하세요. 제가 풀어드리겠습니다.(Relax. Ill get him out.)"라고 대답했다. 이후 스롤트닉은 불릿의 안락사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그와 똑닮은 개 두 마리를 들여와 피해 여성에게 세 마리의 셰퍼드 중 누가 불릿인지 맞춰보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 여성은 맞추지 못했고 안락사를 면한 불릿은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간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스롤트닉을 크게 신뢰하게 되었고 훗날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 된 뒤에도 그를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오랫동안 이어지는 관계를 맺는다. * 빈센트 지간테를 감시하던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진술을 통해 그의 생활패턴을 잘 알 수 있다. 매일같이 어머니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머물고 있었던 빈센트 지간테는 오후 즈음 자신의 아지트인 [[https://i.pinimg.com/736x/29/f4/2e/29f42e77c5a20a1a6f04f12df67b618a.jpg|트라이앵글 사교클럽]]으로 가서 부하들과 [[트럼프(카드)|트럼프 카드]]로 [[피노클(카드게임)|피노클]]을 하며 사업을 논의했다. [*트라이앵글_사교클럽 빈센트 지간테는 외부에서 내부를 일절 볼 수 없게 사교클럽의 입구와 창문을 온통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약 11평 크기의 내부에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었던 이 사교클럽은 낡아빠진 의자와 테이블들, 커피머신이 장착된 바, [[핀볼]] 기계 2대로 채워진 평범한 장소였지만 정문에 '회원 전용(Members Only)'이라는 문구가, 벽면에 '말하지 마라. 이 장소는 도청되고 있다.(Don't talk. This place is bugged.)'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특히 화장실 앞 작은 테이블은 빈센트 지간테의 전용석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없었다. 참고로 이 사교클럽은 [[맨해튼]] 서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암흑가 사람들이 제노비스 패밀리를 '웨스트사이드(Westside)'로 부르는 유래가 되었다. [[:파일:Gigante Club.gif|형 마리오 지간테의 수행을 받으며 사교클럽에 들어가는 빈센트 지간테의 모습(gif).]]] 그들은 사교클럽이 도청되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중요한 대화는 라디오 음량을 키운 채 하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했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노트에 글씨를 써 의사소통을 했고 사용한 종이는 즉시 찢어 불에 태우거나 변기에 흘려보냈으며 아예 사교클럽 밖으로 나가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밤 11시가 되면 빈센트 지간테를 맨해튼의 고급 연립주택까지 태우러 갈 자동차가 도착했고 조직원들은 뒷좌석 문을 열고 두목의 탑승을 도왔다. 이후 자정이 넘도록 근처 옥상에서 빈센트 지간테를 감시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집까지 동행한 부하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신문을 읽거나 TV를 시청했다고 한다. 다음날 오전 9~10시에 어머니가 기다리는 아파트로 돌아가는 게 일과의 전부였는데, 특히 빈센트 지간테의 딸 리타 지간테에 의하면 비행기 탑승을 싫어한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신혼여행을 제외하면 평생 휴가를 떠난 적도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 뉴욕 주 조직범죄전담반장 로널드 골드스톡은 '''"그가 마피아 두목으로 지내며 어떤 즐거움을 얻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의 유일한 쾌락은 자신이 행사한 권력 그 자체인 것 같았습니다.(It was hard to understand what enjoyment he got out of being a mob boss, his only pleasure appeared to be the pure power he exercised.)"'''라고 밝혔다. 한편, 뉴욕동부지구 연방검사 그레고리 오코넬은 "빈센트 지간테는 지부장과 행동대원들에게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하들이 그를 매우 좋아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도 "빈센트 지간테는 돈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미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어디에 숨기느냐였다. 그는 대부분의 지부장으로부터 돈을 상납 받지 않았다."라고 얘기했다. 전 감비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루이스 페란테 역시 자신의 저서에 "빈센트 지간테는 지부장들이 상납금을 가로채도 그냥 내버려 뒀다. 범죄활동 자체를 사랑해 정작 물질에는 초연해진 것이다."라고 썼다. 물론 조직에서 주관하는 도박 사업의 돈을 훔치다 적발되어 처형된 제노비스 패밀리 추종세력 안젤로 상지올로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보통 빈센트 지간테는 검은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 수뇌부 회의가 열리면 짜증부터 냈다. 그는 고위급 조직원들이 참석하는 회의장에선 돈이나 헤아릴 게 아니라 거시적인 평화 유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마피아 수뇌부라면 전체 조직을 위한 정책을 정의하고 규율을 집행하는 데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빈센트 지간테를 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부하 조직원들을 도청한 [[연방수사국|FBI]]에 의하면 그들은 매일 자정까지 사교클럽에서 두목과 [[피노클(카드게임)|피노클]]을 한 뒤 이른 아침만 되면 자신들이 또 사교클럽을 열어 놓아야만 해 힘들다는 불만을 다른 조직원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더욱이 지간테는 악명 높은 [[타짜]]로 유명한데, 조직원들은 그의 사기도박을 알면서도 감히 지적할 수 없었다. 특히 지간테와 자주 피노클을 한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당시 행동대원) [[:파일:Federico Giovanelli.jpg|페데리코 지오바넬리]]는 자신이 본 최고의 카드 기술자로 지간테를 꼽았다. 심지어 다른 조직원은 지간테가 카드게임에서 지는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는데, 진 게임도 그가 이겼다고 선언하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부하들과 카드게임을 하며 종종 밑장을 뺏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본인이 황제니 부하들이 속임수를 눈치채도 판을 엎기는커녕 티도 못 내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빈센트 지간테의 정신질환자 연기는 이러했다. 그는 연방정부로부터 언제어디서어떻게 감시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주차요금기에 말을 걸거나, 뒷골목에 노상방뇨를 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뒤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고 발톱을 깎곤 했다. 한 번은 소환영장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방문할 사실을 미리 알고 욕실에서 우산을 쓴 채 샤워를 하며 영장을 받았다. 그야말로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이라면 웬만한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수준의 연기였다. 여기에 더해 지간테가 높은 수준의 [[타짜]]였다는 사실을 종합해보면 그는 극단적인 [[기만자]]형 성격의 소유자로 보인다. 지간테는 자신을 감시하는 수사관들과 온 세상을 속이며 상당한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 역시 자서전에 지간테는 자신의 얼간이 행동을 통해 연방정부를 얼간이로 만들면서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여러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한 내용 중 남이 나를 속이기 전에 내가 남을 속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꽤 많다고 한다.] 한편, 그라바노는 지간테의 우산 일화를 언급하며 그의 연기가 다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만약 자신이 지간테였고 그 정도로 교도소를 피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그동안 마피아 생활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챙긴 뒤 조직 생활을 청산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 빈센트 지간테의 정신질환자 연기는 한 번씩 허점을 노출했다. 수사기관이 찍은 사진 중에는 [[:파일:지간테 담배.jpg|목욕 가운을 입은 지간테가 부하들과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있다.]][* 2라고 표시되어 있는 인물이 지간테.] 아주 맑은 정신을 가진 걸로 보이는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정신질환자는커녕 보통사람 이상의 강렬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무서운 남자로 보인다. 이러한 사진들의 대부분은 [[연방수사국|FBI]]-[[뉴욕 경찰국|NYPD]] 합동 조직범죄전담반 소속 수사관 톰 브루노가 촬영했다. 그는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 때의 지간테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는데, 한 번은 자신의 아들이 자동차를 몰고 동네로 들어오면서 경적을 크게 울리자 마침 길가에 서 있던 지간테가 "야! 뭐가 그리 급해?(Hey! what are you in a rush?)"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자신을 감시하는 수사관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정신질환자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자택에 있는 지간테를 감시하던 FBI 요원 역시 집에서의 그는 돈을 세는 등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샤워 후를 제외하면 가운 따위는 입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실내에서 지간테가 입은 가운은 야외에서 정신질환자 연기를 위해 입는 허름하고 낡은 제품이 아닌 [[브룩스 브라더스]] 스타일의 명품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FBI 요원은 임무 수행 중 지간테의 곁에 가까이 다가갈 기회가 있었는데, 자동차 뒷좌석에 탄 그가 허름하고 낡은 가운을 벗으니 교활하게도 넥타이를 맨 고급 정장이 드러났다고 한다. [[:파일:Vincent Chin Gigante.jpg|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한 지간테의 사진.]] * [[뉴욕 타임스]] 기자 출신의 마피아 전문가 셀윈 랍은 1980년대에 빈센트 지간테를 직접 인터뷰하기 위해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제노비스 패밀리의 아지트 [[https://i.pinimg.com/736x/29/f4/2e/29f42e77c5a20a1a6f04f12df67b618a.jpg|트라이앵글 사교클럽]]을 찾아갔다. 때마침 지간테는 2명의 수행원과 함께 사교클럽 밖에 있었고 용감한 랍은 그들에게 접근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지간테는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수행원들은 거칠게 반응하며 랍을 쫓아냈다. * 빈센트 지간테는 자신의 동네인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엄격히 통제했다. 실제로 지간테는 훌륭한 운동선수였던 한 아이가 마약에 중독되자 그 아이를 집에서 내쫓고 부모와 격리시켰다고 알려져 있다.[[https://youtu.be/cQ7Lz4-xpbM|#]] * 정부 측 증인이 된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영상 인터뷰에서 "빈센트 지간테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패밀리 내 어떤 위치를 가졌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얘기했다. 이윽고 1980년대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는데, 마이클 프란지스가 콜롬보 패밀리 두목 [[:파일:카마인 페르시코.jpg|카마인 페르시코]]와 사업상 마찰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간테는 자신의 부하 [[:파일:Federico Giovanelli.jpg|페데리코 지오바넬리]]를 시켜 그를 호출했다. 당시 지간테는 마이클 프란지스의 아버지이자 콜롬보 패밀리의 부두목인 [[:파일:존 프란지스.jpg|존 프란지스]]의 안부를 묻는 등 비교적 평범한 대화를 하다 이내 곧 뒷감당 걱정은 하지 말고 소속을 제노비스 패밀리로 옮기라.라는 다소 무리한 제안을 했지만 마이클 프란지스가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https://youtu.be/8Nsjn_TKXBY|#]][* 훗날 마이클 프란지스는 [[존 고티]]와 [[앤서니 살레르노]]를 언급하는 2020년 영상 인터뷰에서도 당대 가장 강력한 마피아가 지간테였다고 언급한다.[[https://youtu.be/4c2QxyGYo9c|#]]] * 별명이 달걀(Benny Eggs)인 제노비스 패밀리 부두목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e/Mangano%2C_Venero_Frank_-6-_small.jpg|베네로 망가노]]는 별명이 소시지(Johnny Sausage)인 자신의 운전기사 [[https://i.pinimg.com/originals/ce/21/bc/ce21bc437b344bf99a75c7d64a132ede.jpg|존 바르바토]]와 함께 매일 아침 빈센트 지간테를 만나 여러 사항을 보고했다. 이를 감시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지간테는 매일 아침식사로 소시지와 달걀을 먹는다'라고 표현했다. * 1980년대 뉴욕 5대 패밀리는 매년 조직원들끼리 [[성탄절]]을 기념하며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대규모 파티를 개최했다. 감비노 패밀리는 [[존 고티]] 등 당대 수뇌부가 총집결했고 루케시 패밀리도 200여 명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한자리에 모였으며 콜롬보 패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런 대대적인 행사는 당시 조직범죄와의 전쟁 캠페인을 수행하던 수사기관의 감시에 상당히 취약했다. 반면 제노비스 패밀리는 비밀주의를 내세운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영향으로 이런 대규모 파티를 개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동태 파악이 어려웠다. 마찬가지 보난노 패밀리도 대규모 파티를 개최하지 않았는데, 과거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조직에 잠입했던 [[도니 브래스코]] 작전 이후 비밀주의가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마이크 타이슨]], [[조지 포먼]], [[에반더 홀리필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로이 존스 주니어]],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등의 프로모터로 유명한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e/Don_King_by_Gage_Skidmore.jpg|돈 킹]]은 빈센트 지간테가 두목이 되기 전과 그가 두목이 된 후에도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로 활동한 인물이다. 당대 프로권투업계 내 마피아의 영향력을 파헤친 크라운 로열 수사를 주도한 [[연방수사국|FBI]] 요원 조셉 스피넬리에 의하면 1982년 10월 2일에 킹과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https://i.pinimg.com/originals/0a/8c/f9/0a8cf90cbc9454fb58361f06c4170bb2.jpg|매튜 이아니엘로]]가 함께 스테이크를 먹으며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특히 빅토르 퀸타나란 가명을 쓰고 [[라틴아메리카]] 출신 거물 마약상으로 위장한 뒤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를 통해 킹과의 접촉을 시도한 FBI 요원은 프란지스로부터 "킹은 우리 패밀리와 함께 있지 않다. 그는 다른 패밀리(제노비스 패밀리)와 함께 있다. 당신을 킹에게 소개하려면 사전에 그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크라운 로열 수사는 메인 타깃인 킹을 기소하지 못한 [[용두사미]]로 끝났는데, 수사가 엎어진 결정적인 원인으로 1982년 11월에 발생한 한국 권투 선수 [[김득구]] 사망사건이 꼽힌다. 당시 스피넬리는 사건을 접으라는 상부의 지시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권투 선수가 경기 중 사망해서 난리 난 이 시국에 FBI가 권투 프로모션에 관여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책이었다. 그렇게 수사가 종결되고 약 2개월 뒤 상술한 FBI 요원 퀸타나는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파일:다니엘 파가노.jpg|다니엘 파가노]]로부터 "왜 콜롬보 패밀리와 접촉했어? 킹은 우리 패밀리와 함께 있는데."라는 씁쓸한 말을 들었다. 훗날 스피넬리는 약 4년 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으로 1981년에 헤비급 권투 세계챔피언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3/Larry_Holmes_awarded_the_Jaycees.jpg|래리 홈즈]]를 만난 날을 꼽는다. 당시 스피넬리가 '권투 선수들을 이용해 부정하게 돈을 번 킹을 수사하는 데 도움을 달라'라고 부탁했지만 홈즈는 눈물을 글썽이며 "킹은 나쁜 친구들이 많습니다. 전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전 가정이 있습니다. 제 가족 때문에 두렵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절 해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스피넬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인 헤비급 권투 세계챔피언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남자보다 두렵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고 회상하며 스포츠 팬으로서 기분이 매우 착잡했다고 한다. *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https://i.pinimg.com/originals/a0/af/13/a0af1330abde9d734e859ef003894abd.jpg|치로 페론]]은 빈센트 지간테의 부관 중 하나인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https://i.pinimg.com/originals/0a/8c/f9/0a8cf90cbc9454fb58361f06c4170bb2.jpg|매튜 이아니엘로]]의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로, 이아니엘로의 총애를 받아 그의 부재 시 지부장 대행을 맡기도 했다. 페론은 1966년~85년까지 약 19년 동안 FBI 측 정보원으로 활동해온 사실이 드러나 1988년에 마피아 측의 보복으로 살해되는 감비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5/5d/Willie_Boy_Johnson.png|윌프레드 존슨]]의 생명을 구한 과거가 있는데, FBI는 2005년 수사 과정에서 페론 본인이 직접 그 사건을 얘기하는 육성을 포착했다. 페론에 따르면 1960년대 당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존슨이 비틀거리며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들어오자 그를 뒤편으로 데려가 지혈한 뒤 소독을 마친 칼로 존슨의 머리에 박힌 총알을 도려내려 했지만 그가 비명을 지르며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에 페론은 함께 있던 자신의 형제로 하여금 존슨을 병원으로 데려가게 했다고 말하며 "그 개자식이 밀고자가 될 줄 알았으면 총알을 빼는 게 아니라 (칼로 찔러) 죽여버리는 건데."라고 덧붙였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력배와 연예인의 유착관계는 쉽게 관찰된다. 물론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할리우드]] 유명 연예인과 친분을 가진 거물급 마피아의 사례들이 잘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마피아/기타]] 문서 참고.] 다만 빈센트 지간테의 경우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a/Morris_Levy%2C_at_the_Roulette_office.jpg|모리스 레비]] 같은 연예업계 사업가와는 관계를 맺었지만 연예인과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자신의 정신질환자 연기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연예인과의 친분을 즐길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지간테의 부하들은 일부 연예인과의 관계가 노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누나 [[라토야 잭슨]]은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을 경호원으로 고용하는 대가로 매달 1000달러를 지불하고 있었고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https://i.pinimg.com/originals/a1/93/39/a1933973d6f2612f4f4514474d80ceb4.jpg|조셉 파가노]]는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같은 유명 가수들을 관리하는 등 직접적으로 연예인을 상대했으며 2000년에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파일:앤서니 시코네.jpg|앤서니 시코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갈취를 당한 배우 [[스티븐 시걸]]은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파일:Prisco_headshot.png|안젤로 프리스코]]가 복역 중인 주립교도소를 찾아가 그에게 1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자신과 시코네와의 갈등을 잘 중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밖에도 지간테의 몇몇 부하들은 유명 배우나 유명 연예기획사 사장과 사진을 찍는 등 자신들의 연예계 인맥을 과시해왔다. [[:파일:Angelo 'The Horn' Prisco and Al Pacino.jpg|배우 알 파치노와 마피아 조직원들의 모습.]] [[:파일:Genovese guys.jpg|영국 연예기획사 사장 윌프 파인과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들의 모습.]] * 빈센트 지간테의 1967년생 딸 리타 지간테는 가부장적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자신이 마피아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파일:Rita Gigante.jpg|지간테 부녀의 화목한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년 시절 기억 속 선명한 공포의 흔적은 그녀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그 기억은 5살의 리타가 할머니 집 책상 밑에 숨어있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녀는 크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반지를 낀 주먹으로 누군가를 가격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윽고 얼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후 아버지는 폭행당해 실신한 남자를 치우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고 그 남자의 몸이 들려나갈 때까지 딸이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유년기에 그러한 공포를 경험한 리타는 성장기에 지속적인 불안증우울증강박장애를 겪었다. 이후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분리불안장애]]를 극복하지 못해 학교에 거의 갈 수 없어 수업에 뒤처졌지만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단 한차례도 유급하지 않았다. 한편, 아버지의 행동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리타는 언니로부터 아버지가 [[조현병|망상조현병]](Paranoid Schizophrenia) 환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흘러 16살이 된 리타는 갓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자신을 마피아 공주(Mafia Princess)라고 부르며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티나라는 여학생의 소식을 접했다. 참다못한 리타는 그녀를 찾아갔는데, 당시 티나는 얼굴이 예쁘고 워싱 청바지를 입는 걸로 유명한 소위 학교에서 잘나가는 여학생(Popular Girl)이었고 마침 2명의 친구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분노한 마피아 두목의 딸을 대면한 티나는 공포에 질렸고 몸이 굳었다. 리타가 티나의 친구들을 향해 화장실에서 나가라고 명령하자 그녀들은 티나를 두고 달아났다. 이윽고 리타는 티나의 머리를 화장실 싱크대에 처박고 얼굴을 구타했다." 다신 우리 가족에 대해 얘기하지 마."라고 쏘아붙인 뒤 쓰러져 울고 있는 티나를 걷어찬 리타는 결국 교장실에 불려가 혼이 났지만 그때만 해도 티나가 정신질환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놀린 줄로만 알았다. 학교를 마친 리타는 티나의 피가 옷에 묻었지만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가족끼리 가까웠던 친구 알레산드라의 집을 찾아가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리타: 오늘 학교에서 아버지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 우리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어. >알레산드라: 알고 싶은 게 정확히 뭐야? >리타: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 >알레산드라: 너희 아버지가 누군지, 손이 어디까지 닿는지 몰라? >리타: 응? 그냥... >알레산드라: 좋아. (의자를 더 가까이하고 목소리를 낮추며) 너 뉴욕의 5대 조직범죄 패밀리를 알아? >리타: 아니. >알레산드라: 루케시, 제노비스, 감비노, 보난노, 콜롬보... '''내가 듣기로 너희 아버지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야.''' >리타: (입이 벌어지며) 두목? >알레산드라: 그게 다가 아니야. '''너희 아버지는 1개 패밀리의 두목만이 아니고 위원회의 의장일 거야.''' >리타: 그게 무슨 뜻이야? >알레산드라: 위원회의 의장은 뉴욕 5대 패밀리의 수장이야. 그건 전체 조직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 만약 큰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너희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돼. 넌 아무한테도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 안 돼. 알겠지? >리타: 우리 아버지는 아픈데 어떻게 그 모든 걸 할 수 있어? 망상조현병 환자잖아. >알레산드라: (한숨을 쉬며 동정 어린 눈으로) 리타, 너희 아버지는 정신질환을 속이고 있어.[[https://books.google.co.kr/books?id=qc28am5CayIC&printsec=frontcover&dq=godfather%27s+daughter&hl=ko&newbks=1&newbks_redir=0&source=gb_mobile_search&sa=X&redir_esc=y#v=snippet&q=Commission&f=false|#]] * 대화를 마친 리타는 그제서야 가문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평상시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이미지는 하얀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를 입고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 환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가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범죄조직의 두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이상했던 일들이 함께 떠올랐는데, 생각해 보면 리타의 친구들은 결코 집에 놀러 올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절대로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타인이 전화기를 사용할 때에도 멀찍이 떨어졌다. 가족들이 자주 시간을 보냈지만 너무 어두웠던 탓에 그녀가 지하감옥(Dungeon)이라 부른 할머니 집안의 커튼은 항상 드리워져있었으며 굳이 아버지가 말을 할 때는 (도청을 경계한 탓에) 반드시 TV나 라디오의 음량을 크게 키웠다. 매일 덩치 큰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아버지의 귀에 속삭였고 그들은 아버지를 왕처럼 숭배했다. 특히 아버지와 그들이 비밀스레 쪽지를 주고받던 모습도 기억났다. 그 밖에 거리에서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공포와 감탄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던 일, 뉴욕 시내 주차요원들이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요금을 받지 않았던 일, 가족 외식 때 대기손님이 잔뜩 늘어선 레스토랑에 불시에 방문해도 즉시 테이블이 세팅되었던 일, 아버지로부터 받는 [[성탄절]] 선물은 항상 고무줄로 싸인 (미성년자가 쓰기엔 너무도 많은 양의) 지폐 뭉치였던 일 등이 떠올랐다. 특히 유년 시절 동네 불량배가 자신을 부적절하게 건드렸을 때 어머니는 절대로 그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 적이 있었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는 어머니의 결정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아버지가 알았다면 그 불량배의 신변이 위태로워졌을 거란 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어머니의 결정이 옳았다. 어쨌든 유년 시절의 리타는 가족들이 받는 모든 특혜가 단순히 아버지가 아프기 때문에 받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레산드라와의 대화를 기점으로 모든 걸 알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눈에 띄게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어느 순간 아버지도 막내딸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때부터 빈센트 지간테는 자신의 산책에 리타를 동참시켰다. 훗날 그녀는 이 시점을 '내가 거대한 연극의 조연배우가 된 순간'으로 묘사한다. 리타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산책에 나설 때면 자동차 안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는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바닥에 두고 걸었고 종종 아버지가 주차요금기와 대화를 시도할 때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던 그녀는 11살 때 아버지를 뺀 다른 가족들에게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고백했다가 분노한 오빠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19살 땐 용기를 내 마피아 두목이자 엄격한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에게까지 커밍아웃을 했다. 뉴저지 주 자택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를 본 리타는 "할 말이 있어요.(I need to tell you something.)"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백이 끝나자 아버지는 "이해해, 그건 그저 과정이야.(I understand, it's just a phase.)"라고 얘기하며 자신은 딸의 성적 취향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의외로 화를 내진 않았다고 한다. 훗날 아버지가 수감되고 병에 걸려 약해지자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전해야겠다고 생각 한 리타는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의 딸이 되지 못해 죄송하고 아버지 역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지만 이제 모든 걸 용서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녀는 편지를 쓸 때만 해도 어떠한 종류의 회신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편지를 읽은 아버지는 곧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진심에 대해 감격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른 뒤 리타가 회고록을 써 가문의 비밀을 출판하려 하자 오빠들과 이복형제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이 아닐 거라며 반대했지만 어머니와 언니들은 지지해 주었다. 이후 [[https://www.amazon.com/Godfathers-Daughter-Unlikely-Healing-Redemption/dp/1401938809/ref=sr_1_1?dchild=1&keywords=The+Godfather%27s+Daughter&qid=1598944479&s=books&sr=1-1|대부의 딸: 사랑, 치유, 구원에 관한 뜻밖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한 그녀는 2013년에 동성 연인과 혼인했다.[* 리타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은 이 회고록에서 읽을 수 있다.] 2023년에 리타는 영상 인터뷰에 출연해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https://youtu.be/OO_BBdn7ecE|#]] * 비록 관계자의 공개 증언이나 검증받은 언론 보도 등으로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상단에 링크된 리타 지간테의 2023년 인터뷰 영상에서 Rocco D.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쓴 댓글에 의하면 과거 그의 아버지가 몰던 자동차([[폭스바겐 비틀]])가 도난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경찰이 아닌 빈센트 지간테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루나 이틀 뒤 아버지의 자동차가 돌아왔고 이후에도 빈센트 지간테는 그 일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 리타 지간테는 아버지의 정체를 친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1983년의 감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았어요. 저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모자가게나 과자가게를 운영한다는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었죠.[* 모자가게가 언급되는 이유는 빈센트 지간테가 소싯적 표면적인 직업으로 모자 제조업체 스콧 노블티사(Scott Novelty Co.) 소속 영업사원 행세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을 알고 나니 처음엔 아무도 우리 가족을 해코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엔 연방정부가 두려워졌습니다. 마침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는 안도감도 있었죠. '''그분은 모든 뉴욕 마피아의 수장이었고 매우 강력하고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He was the head of all the New York families, a very powerful and dangerous man.)''' 전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다 받아들였죠. 그분은 제가 알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우리 부녀는 단 한 번도 그 주제에 대해 대화해 본 적 없습니다." * 리타 지간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부활절]]에 거대한 초콜릿 토끼를 사 왔던 일과 수두(Chickenpox)에 걸린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해 살아있는 병아리를 사 왔던 일, 아버지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Jailhouse Rock]]을 따라 부르며 춤을 추던 모습과 영화 [[대부(영화)|대부]] 속 [[말론 브란도]]의 연기를 보며 넋을 잃던 모습 같은 자상하고 평범했던 순간들을 꼽았다.[* [[Jailhouse Rock]]의 가사는 교도소 파티 이야기고 [[대부(영화)|대부]]는 마피아 영화다. 즉, 빈센트 지간테가 특히 좋아할 만한 대중예술인 셈이다. 여담으로 Jailhouse Rock의 [[https://youtu.be/MfrC8PAQtlg|뮤직비디오(44초 부터)]]를 보면 빈센트 지간테가 어떤 식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을지 상상할 수 있다. 리타에 의하면 아버지는 제대로 된 노래를 단 1소절도 못 불렀지만 최대한 원곡을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는 자신이 관리하는 지역 내 빈곤한 노인들을 위해 무상으로 집세와 식비를 제공하는 등 자선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반면 가장 싫어하는 기억으론 아버지가 애인과 두 집 살림을 하며 그 사이에서 난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때를 꼽았다. 그녀는 그 순간을 고통스러운 배신(Painful Betrayal)으로 묘사했다. * 상술한 리타 지간테의 증언을 통해 빈센트 지간테가 영화 [[대부(영화)|대부]]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부는 세계 영화사에서 첫손에 꼽는 기념비적인 갱스터 영화라는 것 외에도, 당대 미국 마피아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마피아를 비장하고 낭만적으로 그린 대부가 흥행하면서 마피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동경은 작품의 유명세와 비례해 상승했고 영화에서 다루는 뉴욕 시의 5대 패밀리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처럼 행동하는 조직원들의 수도 늘어갔다. 이러한 변화들은 마피아 조직 입장에서 결코 좋지 않은 현상이었고 실제로 [[존 고티]]라는 무비스타 같은 두목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면 빈센트 지간테의 경우, 그 역시 대부의 작품성에 매료되었을지언정 영화와 실생활을 엄격히 구분했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빈센트 지간테 같은 뛰어난 두목이 재직한 덕분에 내부의 기강 해이와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기소로 미국 마피아가 큰 타격을 입은 1980~90년대를 거친 21세기에도 조직범죄계의 아이비리그(Ivy League of Organized Crime)로 남아있다. 실제로 [[NYPD]] 조직범죄전담반장 [[:파일:Joseph Coffey.jpg|조셉 코피]]는 1990년 인터뷰에서 "제노비스 패밀리의 경우, 우리는 생채기도 내지 못했습니다."라고 시인했다.[[https://content.time.com/time/subscriber/article/0,33009,971048,00.html|#]] * 한 [[연방수사국|FBI]] 문서에 의하면 빈센트 지간테는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될 경우 [[동성애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 측 증인이 된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 존 페니시는 증언을 한 정보원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https://youtu.be/GaefCBMUgWU|#]] 하지만 빈센트 지간테의 큰형 [[:파일:Pasquale Gigante.jpg|파스칼레 지간테]]와 막내딸 리타 지간테가 동성애자였고 그 사실을 빈센트 지간테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마냥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할 순 없다. 본래 [[가톨릭]] 신앙을 기반으로 한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은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1992년에 [[뉴저지 주]] 데카발칸테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존 다마토가 자신의 동성애 행각이 발각되어 조직으로부터 처형된 사례가 있다. 훗날 정부 측 증인이 된 데카발칸테 패밀리 행동대원 앤서니 카포는 다마토가 처형된 이유에 대해 '''"동성애자 두목이 라 코사 노스트라 사업을 논의한다면 아무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Nobody's going to respect us if we have a gay homosexual boss sitting down discussing La Cosa Nostra business.)"'''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미국 마피아를 총괄하는 위원회의 의장인 빈센트 지간테의 입장에서 자신의 [[가족력]]이 얽힌 동성애 관련 고민은 충분히 현실적인 고민이었을 것이며 그러한 속내를 측근에게 털어놓았다가 FBI에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연방수사국|FBI]]는 마피아를 수사하면서 때로 비열한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1984년 빈센트 지간테의 측근 그룹인 4인의 돔(The four Doms) 중 한 명이자 제노비스 패밀리의 지부장인 대머리 돔 [[https://i.pinimg.com/originals/c6/7e/fb/c67efbbe8859d139fd4e4927c2baf44d.jpg|도미닉 칸테리노]]를 수사하던 FBI는 그의 [[캐딜락]] 승용차에 도청기 설치 작전을 전개했다. [[:파일:Chin & Dom.png|목욕 가운을 입은 지간테와 함께 걷는 칸테리노의 모습.]] 하지만 현장 요원의 실수로 자동차에 불이 붙었고 이내 곧 차량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후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자동차를 잃은 칸테리노는 보험사로부터 2만 7천 26달러의 보험금을 수령했고 새로운 자동차를 구입했다. 2년 뒤 연방정부는 자신들이 자동차에 불을 질렀으면서도 칸테리노가 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동차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하며 그를 보험사기 혐의로 기소하지만 결국 무죄판결이 내려진다.[* 보험사기 재판 1년 뒤 칸테리노는 연예기획사 사장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a/Morris_Levy%2C_at_the_Roulette_office.jpg|모리스 레비(Morris Levy)]]와 함께 연예업계를 갈취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지만 1년 뒤 항소가 받아들여져 석방되었다. 이듬해 그는 마피아 창문 재판(Mafia Windows Case)으로 재차 기소되지만 심장질환을 이유로 재판에서 배제되어 법망을 피했고 얼마 뒤 사망한다.] * 1981~85년 사이 [[마피아/용어|마피아 위원회]] 회합에 제노비스 패밀리를 대표해 참석했던 인물은 빈센트 지간테의 앞잡이로 거리 책임자(Street Boss)를 맡고 있었던 [[앤서니 살레르노]]였다. 정부 측 증인이 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빈센트 카파로에 의하면 이 4년 동안 지간테가 직접 위원회 회합에 참석한 건 딱 1번뿐이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회합은 야외에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발견되어 급하게 마무리되었는데, 당시 지간테를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창문으로 탈출했으며 뚱뚱한 살레르노는 몸이 끼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카파로는 탈출 직후 자신을 만난 살레르노가 그 시점에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 1980년대 중반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 [[https://i.pinimg.com/originals/1d/63/b8/1d63b825f16be9c7b3c3e0c30e9d89e2.jpg|니콜라스 아우레타]]는 [[폴 카스텔라노]]로부터 약 450만 달러에 매입한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700만~900만 달러 사이에 매각하여 약 250만~450만 달러 사이의 시세차익을 냈다. 이후 아우레타의 두목 빈센트 지간테가 부동산 판매 수익의 300만 달러를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했고 동시기 카스텔라노를 살해하고 감비노 패밀리의 새로운 두목이 된 [[존 고티]]도 부동산 판매 수익에서 자신의 몫을 주장했다. 결국 1986년 10월 뉴욕 시 3번가 900번지 [[https://www.paramount-group.com/property/900-third-avenue/|파라마운트 빌딩]] 내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 마피아 패밀리 간 담판이 벌어졌다. 당시 제노비스 패밀리 측에선 부두목 [[https://i.pinimg.com/originals/58/9a/13/589a139c2f31ddf14880217896730547.jpg|사베리오 산토라]], 지부장 [[:파일:Vincent DiNapoli.jpg|빈센트 디나폴리]], 지부장 [[리보리오 벨로모]], 행동대원 [[https://i.pinimg.com/originals/db/99/b5/db99b597e4eb4c7275fdac40bd4a16e8.jpg|루이스 디나폴리]], 행동대원 빈센트 카파로가 담판에 참석했다. 양측의 치열한 논쟁 끝에 지간테와 고티 모두 부동산 판매 수익에 대한 권리가 없고 전 제노비스 패밀리 거리 책임자(Street Boss) [[앤서니 살레르노]]가 부동산 판매 수익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담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참석자 중 하나이자 훗날 정부 측 증인이 되는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카파로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 빈센트 지간테는 주요 목표였던 [[존 고티]]는 살아남고 부두목 [[:파일:Frank DeCicco.jpg|프랭크 데치코]]만 살해된 1986년 폭탄 공격과 존 고티를 습격한 총잡이가 그의 수행원들에게 역으로 납치되어 살해된 1987년 총기 공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존 고티 제거 계획을 추진했다.''' 마피아는 철저한 비밀결사라는 생각을 가졌던 빈센트 지간테는 연예인 기질이 충만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끈 존 고티를 경멸했고 나아가 자신이 소속된 [[마피아/용어|마피아 위원회]]의 허가 없이 실행된 [[폴 카스텔라노]] 제거에 대한 처벌의 일환으로 존 고티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철저한 엘리트 코스를 밟고 패밀리의 두목이 된 빈센트 지간테의 눈에 비친 존 고티의 [[퀸스]] 오존 파크 조직은 마피아 주류 세력에서 한참 벗어난 비주류 세력에 불과했기에 쉽사리 자신들의 사업 파트너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당시 빈센트 지간테는 존 고티를 제거한 뒤 [[카를로 감비노]] 운전기사 출신의 제임스 파일라를 새 두목으로 지명할 계획이었다. 이렇듯 존 고티 제거 계획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사실은 1987~88년 사이 [[연방수사국|FBI]]가 제노비스 패밀리 상담역(Consigliere) [[https://i.pinimg.com/originals/d9/4a/6f/d94a6f60d35fc27914b66b294946d5e6.jpg|루이스 만나]]를 도청한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당시 빈센트 지간테의 지시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나는 존 고티의 사교클럽 근처에서 그를 살해하는 계획을 부하에게 설명하며 "위장을 해, 거긴 오픈된 장소니까.(Wear a disguise, It's an open place.)"라고 얘기했다. FBI는 도청 내용을 토대로 입수한 정보를 존 고티 측에 전달할 법적도덕적 의무가 있어 그에게 알렸다. 당시 존 고티에게 정보를 전달한 FBI 요원은 "당신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있습니다. 난 그들이 성공하길 바랍니다.(There's plot to kill you. I hope they succeed.)"라고 경고했는데, 그 요원에 의하면 제노비스 패밀리가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존 고티의 얼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Face dropped)고 한다. 이후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들의 대화를 도청한 기록에 따르면 한 조직원이 "존 고티가 우리를 알아챘어.(John Gotti knows we.)라고 얘기한다. 며칠 뒤 FBI는 만나와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파일:James Napoli.jpg|제임스 나폴리]]의 대화를 도청했다. >나폴리: 언제 작업합니까? >만나: (존 고티의 동생)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8/Genegotti2.jpg|진 고티]]는 죽은 목숨이야. >나폴리: 아시다시피, 우리는 남은 평생 동안 이 대가를 치를 겁니다. [*제임스_나폴리 1970년대 중반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지부장이 된 나폴리는 얼마 안 가 1969년 [[세계 복싱 협회|WBA]][[세계 권투 평의회|WBC]] 라이트헤비급 세계 타이틀전 경기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자행한 법정모욕죄로 약 6개월 동안 수감되었다. 당시 나폴리는 교정시설에서의 편의를 위해 교도소장과 교도관을 매수했는데, 당시 빈센트 지간테의 성직자 동생 [[https://www.gettyimages.dk/detail/news-photo/father-louis-gigante-brother-of-the-mafia-boss-gigante-news-photo/97264419|루이스 지간테(Louis Gigante)]]가 그의 로비를 도왔다고 알려져 있다. 나폴리는 출소 이후인 1978년에 약 2000명이 고용되어 매년 1억 5천만 달러 상당의 수익을 올리는 국가에서 가장 큰 도박 사업을 관리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어진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그는 약 5년의 수감생활을 겪었다. 이후 상술한 만나와 나폴리의 대화가 있고 그 이듬해인 1989년에 두 사람 모두 존 고티와 진 고티에 대한 살인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만나는 2건의 살인교사, 2건의 살인공모와 공갈 혐의로 징역 80년을 선고받은 반면 나폴리는 법망을 피했지만 3년 뒤인 1992년에 사망한다. 2021년에 나폴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9287047&qvt=0&query=%EA%B0%B1%EC%8A%A4%ED%84%B0%20%EC%98%A4%EB%B8%8C%20%EB%89%B4%EC%9A%95|갱스터 오브 뉴욕(American Rackets)]]이 제작되었다. 본 작품엔 빈센트 지간테가 비중 있게 등장하며 아버지를 따라 제노비스 패밀리의 추종세력(Associate)으로 활동한 나폴리의 막내아들이 직접 등장한다. 여담으로 막내를 포함한 나폴리의 세 아들 모두 제노비스 패밀리의 추종세력으로 활동했다.] * 한편, 제노비스 패밀리가 자신을 살해하는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존 고티]]는 빈센트 지간테에게 담판을 제안했다. 두목들의 만남에 앞서 존 고티의 안전에 관한 사항은 동생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8/Genegotti2.jpg|진 고티]]가 확인했고 빈센트 지간테의 안전에 관한 사항은 측근 [[도미닉 시릴로]]가 확인했다. 빈센트 지간테는 이 담판에서 존 고티에 대한 부하들의 음모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며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자신이 만나를 살해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뉴저지주경찰청장 클린턴 파가노가 ''''턱''''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승인 없이는 일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라고 지적했듯 다른 패밀리의 두목을 제거하는 중대한 계획을 부하들이 독자적으로 기획했다는 빈센트 지간테의 주장은 믿기 힘든 변명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비쥬|볼키스]]를 나누며 표면적인 화해를 이루어냈다. 이후 빈센트 지간테의 속내를 알게 된 존 고티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만나와 그의 수하들을 잘 감시하라는 지시를 부하들에게 내렸다. 얼마 뒤 존 고티도 빈센트 지간테를 살해하고 자신과 가까운 [[https://i.pinimg.com/originals/c9/3f/26/c93f26a507907d4957fb9b24ccae7321.jpg|알폰스 말랑곤]]을 제노비스 패밀리의 새로운 두목으로 추대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FBI는 이 정보를 빈센트 지간테의 형 [[:파일:Mario Gigante.jpg|마리오 지간테]]와 막냇동생 [[https://www.gettyimages.dk/detail/news-photo/father-louis-gigante-brother-of-the-mafia-boss-gigante-news-photo/97264419|루이스 지간테]] 신부에게 알렸다. 이후 빈센트 지간테의 아지트 [[https://i.pinimg.com/736x/29/f4/2e/29f42e77c5a20a1a6f04f12df67b618a.jpg|트라이앵글 사교클럽]] 일대 경비가 더 삼엄해졌고 빈센트 지간테의 자택 앞은 그의 운전기사 비토 팔미에리가 항시 지켰다.[* 뉴욕 마피아 세계에선 대상자의 가족들이 보는 앞이나 대상자가 거주하는 자택 앞에서만큼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에 자택 근처에서의 경호는 비교적 신경을 덜 쓴다.] 하지만 빈센트 지간테를 노리는 존 고티의 계획은 다른 패밀리들, 특히 루케시 패밀리의 지지를 받지 못해 실행할 수 없었다. 얼마 뒤 빈센트 지간테와 만나 갈등을 해결한 존 고티는 말랑곤을 호출해 "만약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턱''''이 알게 되면 뭐라고 얘기할까? 자네가 말한 내용을 그가 알게 된다면?"이라고 위협하며 입단속을 시켰다. 훗날 빈센트 지간테의 [[전기물|전기]]를 쓴 뉴욕 데일리뉴스 기자 출신의 마피아 전문가 래리 맥셰인은 '''존 고티는 빈센트 지간테를 두려워했다'''라는 이야기를 여러 수사기관 관계자와 전직 마피아로부터 들었다고 밝힌다. 대표적으로 FBI 뉴욕지국 감비노 패밀리 담당팀장 브루스 모우가 "존 고티는 빈센트 지간테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제노비스 패밀리가 가장 강력하고 억세며 악랄한 조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얘기했고 뉴욕동부지구 연방검사 그레고리 오코넬 역시 "반면 빈센트 지간테는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그 의견에 동의했다. FBI의 대표적인 마피아 전문가 리처드 로스는 "여러분들은 존 고티가 두목들의 두목(Boss of all Bosses)이라는 헛소리를 듣고 계시지만 언제나 제노비스 패밀리가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범죄조직이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뉴욕 주 조직범죄전담반장 로널드 골드스톡도 "존 고티는 가장 신뢰하는 부하 조직원과 함께 있을 때조차 자신이 [[폴 카스텔라노]]를 살해한 배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자신의 위반 행동을 시인하면 그 소식이 어떤 식으로든 빈센트 지간테의 귀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정부 측 증인이 된 [[필라델피아]] 패밀리 부두목 [[:파일:Phil Leonetti.jpg|필립 레오네티]]는 "존 고티는 빈센트 지간테가 가진 권력을 자신은 절대로 누리지 못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그를 싫어했을 것이다. 내 말은, 신문과 언론에서 존 고티를 말쑥한 두목으로 만들었지만 암흑가 사람들은 뉴욕의 진정한 권력자가 빈센트 지간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존 고티는 [[목욕 가운]]을 입은 그 남자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정부 측 증인이 된 제노비스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마이클 비스콘티는 "'웨스트사이드(제노비스 패밀리)'는 감비노 패밀리와 달랐다. 존 고티는 자신이 두목이라고 말하는 듯한 정장을 입었다. 반면 우리 조직원들은 구멍 난 스웨터를 입었지만 아파트에 현금 5000만 달러를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 상술했듯 빈센트 지간테는 가장 강력한 패밀리의 두목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업을 논의하는 형태의 [[마피아/용어|마피아 위원회]] 회합이 수사기관의 감시에 상당히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위원회 재판 이후인 1986년부터 두목들의 정기적인 회동이 폐지되었는데, 1988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와 루케시 패밀리 두목 [[:파일:빅터 아무소.jpg|비토리오 아무소]]는 모처럼의 두목 간 회동을 추진했다. 지간테는 전령을 통해 의사를 교환하자며 계속 거부했지만 신임 콜롬보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의 위원회 참여를 다루는 중대한 문제는 만나서 논의해야 한다는 그들의 설득에 마지못해 동의하는 대신 회동을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프랭크 다폴리토 형의 아파트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지간테가 그 아파트를 약속 장소로 정한 진짜 이유는 자신의 친척이 같은 건물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동 전날 친척 집에 잔 뒤 회동 당일 [[목욕 가운]]을 입고 부두목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e/Mangano%2C_Venero_Frank_-6-_small.jpg|베네로 망가노]]와 함께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즉, 지간테는 자신이 회동에 참석하는 모습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그 아파트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회동을 마친 뒤 고티는 부두목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에게 지간테의 교활함을 인정했다고 전해진다. * 어느 날 [[존 고티]]가 빈센트 지간테에게 자신의 아들을 감비노 패밀리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입단시켰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이에 빈센트 지간테는 "이런 그거 유감이군.(Jeez, I'm sorry to hear that.)"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빈센트 지간테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반대로 제노비스 패밀리의 정규조직원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남 [[:파일:Andrew Gigante.jpg|앤드루 지간테]]는 2003년에 마피아 사업과 깊이 연루되어 약 2년간 복역한 사실이 있다. 당시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그는 유죄판결이 확실시되자 정부의 허가를 얻어 아내와 4명의 자녀를 데리고 [[디즈니 월드]]에 다녀온 뒤 수감되었다. 이에 조직범죄 전문가 하워드 아바딘스키 교수는 마피아 사업과 아들을 연루시키지 않는다고 말해놓고 연루시킨 지간테는 위선자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은 그의 위반행위 중 가장 사소한 것입니다. 살인자, 갈취자, 거짓말쟁이인 그가 아들을 두고 한 말을 왜 믿어야 합니까?"라고 대답했다.[* 2018년에 정부 측 증인이 된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 존 페니시에 의하면 빈센트 지간테의 장남 앤드루 지간테와 사생아 [[:파일:A2B992E2-4CCB-433A-8E4C-CD0A69C0312D.jpg|빈센트 에스포지토]]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제노비스 패밀리의 정규조직원이 되었다고 한다.] *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는 자신이 [[존 고티]]를 배신한 이유 중 하나로 고티에게 빈센트 지간테 살해 지시를 받은 일화를 꼽았다. 그라바노에 의하면 고티는 자신을 제거하고 싶어 했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지간테를 살해하라는 무리한 지시를 내렸고 만약 자신이 그 지시를 수행했다면 반드시 제노비스 패밀리의 보복으로 살해되어 결과적으로 고티의 뜻대로 되었을 것이라 주장했다.[[https://youtu.be/wkXLW7IB_cs|#]] * 미국 연방법원 문서에 따르면 1989년 루케시 패밀리 지부장 [[https://i.pinimg.com/originals/a3/be/a7/a3bea7df321eb9e80bf541f6f92b27e4.jpg|앤서니 토르토렐로]]가 사석에서 빈센트 지간테의 아내 혹은 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아마 지간테의 두 집 살림을 겨냥한 말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상술했듯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조직원의 두 집 살림을 금지하지만 지간테에겐 그러한 규율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토르토렐로는 행동대원 시절의 지간테가 1959년에 마약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며 그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 된 뒤 특정 부하들에게 마약 사업을 허가한 채 그들로부터 막대한 범죄수익을 상납 받으면서 대다수의 다른 정규조직원들에겐 마약 사업을 금지하는 모습이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지간테 뿐만 아니라 역사상 모든 이탈리아계 마피아 두목들은 마약 규율의 해석을 두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토르토렐로의 험담 소식을 들은 지간테는 격분했고 루케시 패밀리 두목 [[:파일:빅터 아무소.jpg|비토리오 아무소]]에게 그를 살해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무소는 자신의 지부장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순 없다고 말하며 지간테의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 토르토렐로에게 가하는 폭행을 허가했다. 이후 루케시 패밀리 수뇌부의 귀띔을 받은 토르토렐로는 자신이 폭행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한동안 깁스를 하고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 모습을 본 지간테는 토르토렐로가 충분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흡족해했다고 한다.[[https://youtu.be/tzmgsj60Yd8|#]] * 1989년 뉴욕 시의 타블로이드 신문이자 미국 최초의 대안신문(Alternative Newsweekly)인 [[https://www.villagevoice.com/|빌리지 보이스]]가 빈센트 지간테의 막냇동생 [[https://www.gettyimages.dk/detail/news-photo/father-louis-gigante-brother-of-the-mafia-boss-gigante-news-photo/97264419|루이스 지간테]] 신부에 대한 심층취재를 했다. 지간테 신부는 처음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푸에르토리코]]의 한 교구에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스페인어]]를 배우며 빈민가 성직자의 이미지를 쌓았다. 지간테 신부는 [[중남미]]에서 약 2년간 사목한 뒤 고향인 뉴욕 교구로 돌아왔고 훗날 [[미국 연방대법관|연방대법관]]이 되는 [[소니아 소토마요르]]를 비롯한 여러 신도들의 성직자로 활동하며 1970년 [[미국 하원|연방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지만 1973년 뉴욕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이후 재선에 성공했다. 일찍이 지간테 신부는 빈곤층이 대다수인 자신의 교구민들을 위한 도시재생 사업에 관심이 많아 1968년부터 브롱스남동부공동체조직(South East Bronx Community Organization 이하 SEBCO)을 결성하여 공공아파트 건설 사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순전히 공익만을 위한 건 아니었는데, SEBCO를 위한 공적 자금조달은 지간테 신부의 형제들이 몸담고 있는 범죄조직에 5000만 달러 상당의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로 지간테 신부의 교구민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크고 작은 아파트들은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급 조직원들이 소유하거나 소속된 건설사들에 의해 지어졌다. 여기에 SEBCO를 통한 제노비스 패밀리의 [[돈세탁]] 규모 역시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실제로 SEBCO는 [[뉴욕 대도시권]] 일대에 다수의 [[세탁소]]를 운영한다. 잘 알려져 있듯 세탁소는 직업 범죄인들이 아주 선호하는 돈세탁 사업이다.] 관련 문서 수천 쪽을 입수한 빌리지 보이스는 마피아와 관련된 도급업자들이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주관하는 8000만 달러 이상의 건설 계약을 받은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여기에 지간테 신부는 7000만 달러 상당의 추가 건설 계약도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빌리지 보이스는 자신들이 파악한 SEBCO의 공공건설 계약 규모가 약 2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SEBCO는 건설 프로젝트가 끝나도 부동산 관리를 통해 매년 45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모든 관리는 지간테 신부와 관련 있는 회사들이 맡았다. 더욱이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SEBCO가 관여하지도 않는 브롱스의 건설 사업을 논의하는 사업가들이 "신부가 우리 사업을 허락해야 돼."라고 말하는 육성을 포착했다. 이는 지간테 신부를 거치지 않으면 브롱스에서 건설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그의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물론 대부분의 수사관과 기자들은 지간테 신부가 행사하는 모든 권력이 마피아 두목인 형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지간테 신부는 공공아파트 건설 사업을 통해 지역 내에서 성자의 반열에 올랐고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0/0b/Cardinal._John._Joseph._O%27_Connor.jpg|존 오코너]] [[추기경]]은 지간테 신부를 [[가톨릭교회]]의 뛰어난 건축가(Master Builder)로 묘사했다.[* 이 부분만 보고 오코너 추기경을 부패한 성직자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는 수많은 성범죄를 저지른 시어도어 매캐릭 신부의 악행을 규탄하는 서한(오코너 서한)을 [[교황청]]에 보낸 최초의 고위 성직자로 알려져 있다. [[http://www.catholicpress.kr/m/view.php?idx=6814|모두가 확실하지 않다, 근거 없다" 그러나, 남달랐던 한명의 추기경]] 기사 참고.]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5/Edward_Koch_%281988%29.jpg|에드 코흐]] 뉴욕시장은 지간테 신부의 조언과 지지를 구했고 [[미국 주택도시개발부|연방주택도시개발부]] 산하 연방주택청과 뉴욕시주택공사 소속 고위 간부들도 지간테 신부를 자주 방문했으며 브롱스 성당 앞에는 지간테 신부의 동상이 세워졌다. 한편, 대부분의 교구민은 빈곤층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지간테 신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1989년 시점의 그는 브롱스에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고급 주택에 거주했고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고급 리조트, [[맨해튼]]에 위치한 2개의 협동조합, [[캐딜락]]이 포함된 6대의 자동차와 6개가 넘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간테 신부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친구에게 "사람들은 내가 공짜로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바로 그들의 문제야."라고 말했다. 또 본인을 '통제받지 않는(Non-order)' 성직자로 묘사했는데, 자신은 [[예수회]]처럼 엄격한 재정적 한계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러 마피아 조직원의 장례미사를 집전해온 지간테 신부는 자신의 가문이 '이탈리아인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박해를 받아왔으며 사실 마피아라는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https://i.pinimg.com/originals/80/64/20/80642010f8576fa76283b0214c47d533.jpg|그리니치 빌리지를 산책하는 빈센트 지간테와 지간테 신부의 모습.]] [[:파일:V.G Crew with L.G.jpg|휠체어를 탄 빈센트 지간테를 수행하는 지간테 신부의 모습.]] 시간이 흘러 2004년 시점의 SEBCO엔 6개의 비영리 단체와 12개의 영리회사를 포함한 18개 사업체가 등록되어 있었다. "내가 온 동네를 지었다!"라며 본인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하는 지간테 신부는 연봉 15만 달러를 받으며 5개 회사의 [[CEO]] 및 비영리 단체 대부분의 회장이 되어있었다. SEBCO의 비영리 단체들은 5000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자체적으로 보유했고 3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했다. 영리회사 중 하나인 센트리 보안회사(Sentry Security)는 SEBCO가 지은 아파트 일대의 치안 유지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보안회사의 서비스가 그다지 좋지 않아 동네를 활보하는 마약중독자와 매춘부들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1997년 어느 광인이 센트리 보안회사 소속 경비원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60세 할머니와 9살 손녀가 사는 아파트에 침입했다. 그 광인은 자신이 [[HIV]] 감염자이며 두 사람에게 병을 옮기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할머니가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마피아 보안회사의 경비원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1시간 넘게 공포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 이웃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여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훗날 지간테 신부는 그나마 있던 보안인력마저 없애는데,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세상에 돈을 내지 않고 받는 서비스는 없소."라고 답한다. 이후 지간테 신부는 보안회사를 철저히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체로 바꾼다.] 지간테 신부의 뒤를 이어 SEBCO를 장악할 후계자는 빈센트 지간테의 차남 살바토레 지간테로 알려져 있다.[* 상술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간테 신부는 마피아와 결탁한 성직자이면서 부동산업계과 관련된 인물로 정의할 수 있는데, 1990년에 개봉한 영화 [[대부(영화)|대부]] 3편의 [[대부(소설)/등장인물|길데이 대주교]] 캐릭터와 상당히 유사하다.] [*살바토레_지간테 살바토레 지간테는 아버지 사후 제노비스 패밀리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된 형 [[:파일:Andrew Gigante.jpg|앤드루 지간테]]와 달리 [[뉴욕 대학교]] 부동산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사회경영학과에서 학업을 마친 뒤 SEBCO 산하 센트리 보안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는 등 직접적인 마피아 사업과 거리를 두고 합법적인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빈센트_디나폴리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파일:Vincent DiNapoli.jpg|빈센트 디나폴리]]는 지간테 신부와 함께 1970~80년대 조직의 건설 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결국 그는 1988년에 건설 입찰 조작노동 공갈갈취도박업살인공모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24년을 선고받고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교정당국의 기록에 따르면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 로렌스 웨커가 정기적으로 디나폴리를 방문했고 다른 루케시 패밀리 조직원도 16개월 동안 35번이나 디나폴리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후 1991년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뒤집힘에 따라 디나폴리는 석방되었다. 출소 후에도 조직 생활을 이어간 그는 2005년에 사망했다.] 한편, 빈센트 지간테가 사망한 뒤 지간테 신부는 뉴욕 데일리뉴스 기자 출신의 마피아 전문가 래리 맥셰인과의 인터뷰에서 "제 형이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었냐고요? 맞습니다. [[:파일:비토 제노비스.jpg|비토 제노비스]]에 의해 특별히 선택받았죠."라고 얘기하며 오랫동안 숨겨온 진실을 고백했다. 한편 지간테 신부는 2022년에 사망하면서 약 700만 달러의 유산을 32세의 '''아들''' 루이지노 지간테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남겼다. 루이지노 지간테에 의하면 자신의 존재는 비밀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애써 숨기진 않았다고 하는데, 당시 지간테 신부는 [[가톨릭 뉴욕 대교구]]의 추궁을 받자 아들의 존재를 당당히 인정했다고 한다. 이 주장대로면 뉴욕 대교구는 지간테 신부의 위반행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을 감안해 사제직을 박탈하기는커녕 어떠한 불이익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성립돼 많은 대중들이 비판을 가했다.[[https://www.nytimes.com/2022/12/26/nyregion/louis-gigante-bronx-nyc-priest-son.html?smid=url-share|#]] * 빈센트 지간테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으로 재직하고 있던 시기에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살바토레 프로파치의 사돈인 살바토레 아베나 변호사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이자 1억 달러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폐기물관리업계의 거물 [[https://i.pinimg.com/originals/1a/f6/6f/1af66fa944bdc5845e9daa7708c6552a.jpg|카마인 프랑코]]와 분쟁이 있어 그를 고소했다. [[https://youtu.be/8qiH2GttjSg|폐기물관리업계와 마피아의 관계 및 프랑코를 다룬 뉴스.]] 이후 프로파치가 아베나를 찾아와 고소 취하를 종용했는데, 뉴욕의 두목들이 법정이 아닌 '명예의 법정'에서 갈등을 해결하길 원하며 프랑코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최고소득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에 아베나는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 고소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항변했지만 프로파치로부터 '''"그건 사업에 해롭습니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너무 강력해서 우리 모두 다칠 겁니다. 마피아는 마피아를 고소하지 않습니다. 마피아는 마피아를 죽입니다.(Its bad for business. The Genovese Family is too big, were all gonna get hurt from this. Goodfellas don't sue Goodfellas. Goodfellas kill Goodfellas.)"'''라는 대답을 들었다. 얼마 안 가 고소는 취하되었고 아베나와 프랑코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법정 밖에서 합의를 보았다.]] 이후에도 프랑코는 [[뉴욕 대도시권]] 일대의 폐기물관리업계를 장악하기 위한 부정한 계획을 세운 혐의 등으로 약 1년의 수감생활을 겪기도 하는 등 마피아와의 관계를 이어오다 2020년에 85세로 사망했다. * 어느 날 빈센트 지간테는 자신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인사를 하거나 경의를 표하지 않은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애인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연방수사국|FBI]]는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고 있었는데, 이는 훗날 지간테의 정신건강이 멀쩡하다는 증거가 되고 그의 육성이 대중에 공개된 몇 안 되는 자료로 남아있다. (이하 대화 내용.) >애인: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났는데? 이발소? 그 사람은 당신이 거기 있는 줄 몰랐을 거야. >지간테: 아니야 내가 거기 있는 줄 알았어. 그놈이 제일 먼저 나왔단 말이야. 집 들어올 때 뭐 좀 사 올까? >애인: 아니 괜찮아. (입맞춤 소리) * [[시계공]]이었던 빈센트 지간테의 아버지는 1979년에 사망했다. * 빈센트 지간테의 어머니 욜론다 지간테는 그녀의 셋째 아들이 마피아 두목일 수도 있다는 기자의 말에 "두목? 걔는 화장실의 두목이야!(Boss? Hes boss of the toilet!)"라고 버럭 소리칠 정도의 여장부였다. [[https://i.pinimg.com/originals/24/2c/5e/242c5eb21c72e3f9dc1d0d9d960b023c.jpg|욜론다 지간테와 빈센트 지간테의 화목한 모습.]] 1996년 94세의 욜론다 지간테는 뉴욕시의원 출신 가톨릭 성직자인 막내아들 [[https://www.gettyimages.dk/detail/news-photo/father-louis-gigante-brother-of-the-mafia-boss-gigante-news-photo/97264419|루이스 지간테]] 신부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던 중 윌리엄 킹이란 [[할렘]] 사람에게 지갑을 강탈당했다. 당시 범인은 몇 구역을 못 벗어나 경찰관에 현행범으로 검거되었는데, 뉴욕 시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이를 두고 한낱 거리의 잡범이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범죄조직 두목 어머니의 지갑을 훔친 것도 모자라 경찰에 즉시 붙잡힌 점을 꼬집으며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강도(The Worlds Dumbest Mugger)'''로 풍자했다. 실제로 범인을 검거한 로버트 맥케나 경관은 그를 경찰차에 태운 뒤 "당신은 세계 최악의 강도야 지금 누구를 강도질했는지 아나?(You are the world's worst mugger, Do you know who you mugged?)"라고 경고했다. 당시 맥케나 경관은 90달러가 든 욜론다 지간테의 지갑을 돌려주었는데, 그녀는 거의 울듯이 감격하며 지갑 속 가족사진에 입을 맞췄다고 한다. 한편, 지간테 신부는 빈센트 지간테가 사건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자고 있었는데 제가 굳이 깨워서 그 사실을 얘기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했다. 이후 징역 1년 6개월~3년의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범인은 법정에서 지간테 가문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사건 이듬해인 1997년 5월 욜론다 지간테는 빈센트 지간테의 재판이 열리기 약 1개월 전에 사망한다. * 빈센트 지간테의 딸 리타 지간테는 아버지의 1997년 재판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분은 법정에서도 정신질환자 연기를 계속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버지는 목욕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들어왔고 우리 자녀들은 방청석에 앉아 있었죠. 그분은 고개를 돌려 저희를 바라봤는데 마치 '너희들이 보여'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습니다. '사랑해 난 괜찮아' 같은 느낌으로요. 마음이 아팠어요." * 1997년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된 빈센트 지간테의 수용자 번호는 26071-037이었다. * 연방교도소에 수감될 당시 고질적인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던 빈센트 지간테는 교정시설에 비치된 전화기로 아내와 통화하며 의사에게 진료받은 이야기와 처방받은 약 이야기를 주로 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담당의가 최고의 의사는 아닐지언정 그럭저럭 괜찮은 의사이며 본인에게 상당히 친절하다고 말하는 등 의사소통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간테의 변호인이었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4/Benjamin_Brafman_2017.png|벤자민 브리프만]] 변호사는 본인의 또 다른 의뢰인이자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에게 자신이 [[텍사스 주]] [[https://www.bop.gov/locations/institutions/ftw/|포트워스 연방교정의료센터]]에서 지간테를 접견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 깜짝 놀랐다고 밝힌 바 있다. * 2001년 4월 30일 연방정부는 빈센트 지간테가 교정시설에서 아내와 통화하며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 연기를 하면서도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수준 높은 농담을 구사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지간테: 내가 TV에 나왔다던데? >(Somebody says I was on TV?) >아내: 맞아. >(Yes, you are.) >지간테: 무슨 주제로? >(About what?) >아내: 난 못 봤어. 몰라. >(I haven't seen it. I don't know.) >지간테: 그놈들이 뭐래? >(What'd they say?) >아내: 당신 소식은 짧고 아주 빠르게 지나가서... >(They said that you were on briefly, very quickly but that...) >지간테: 내가 어떤 혐의로 기소됐다던데. >(But they says I'm indicted on something.) >아내: 내가 아는 거라곤 몇몇 사람들이 체포된 거야. TV에선 그 사람들이 패밀리에 속해있고 당신이 텍사스 주에서 (패밀리를) '''관리'''했대. >(All I know is, they said some men were arrested. They said they were with a family and you were '''running''' it from Texas.) >지간테: 내가 (패밀리를) '''관리'''한다고? >(I'm '''running''' it?) >아내: 응. >(Yeah.) >지간테: 난 (교도소) 운동장을 '''뛰고''' 있는데. >(I'm '''running''' around the park.) * 2001년 9월 빈센트 지간테는 교정시설 TV를 통해 [[9.11 테러]] 소식을 접하자마자 자신의 사생아인 [[:파일:A2B992E2-4CCB-433A-8E4C-CD0A69C0312D.jpg|빈센트 에스포지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그는 "몇 명이 죽었어?", "안에 아이들이 있었나?", "맙소사.", "그들을 위해 기도할게.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확보해."와 같은 말들을 남겼다. 이는 지간테가 수감된 후 처음으로 정신질환자 연기를 일절 하지 않고 가족과 통화를 한순간인데, 훗날 연방정부는 이 일화를 통해 지간테의 정신건강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 빈센트 지간테가 수감되어 있었던 연방교도소 내 특별구역(Special observation section) 담당 [[교도관]] 크리스토퍼 섹스턴은 지간테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와 가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는 자신의 [[맨해튼]] 연립주택에 저를 초대하면서 그곳을 방문하면 자신의 가족들이 저를 환대해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설 내에서 그는 매우 카리스마 있었고 정중했으며 감수성이 예민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도관을 괴롭힌 한 수용자에 대해 매우 화가 나 교도관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당신을 돕기 위해 감방을 나오고 싶었지만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라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교도소 수용자들의 지도자였지만 일반 수용자들과 함께 있는 걸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어울려야 하고 수용자들은 항상 이야기를 지어내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접견실에서 다른 수용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는 즉시 그 수용자를 향해 "쉿!"이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는 마피아를 배신한 [[:파일:새미 그라바노.jpg|살바토레 그라바노]]를 '빌어먹을 쥐새끼에 쓸모없는 인간쓰레기(Fucking rat, worthless piece of shit)'로 묘사했고 자신의 후견인 [[:파일:비토 제노비스.jpg|비토 제노비스]]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그는 의료과장님이 순시를 도는 모습을 보고 '''"저 망할 계집이 이곳의 책임자요?(The fucking broad that runs this joint?)"'''라고 물어 저를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시설로 이송을 가면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저를 찾아와 자신이 이곳에서 보인 행동들에 대해 질문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 빈센트 지간테가 수감되어 있었던 연방교도소의 간호사 샤론 브라운은 지간테의 시설 내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금지된 물건을 가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문제 수용자가 있었습니다. 그 수용자는 주간이고 야간이고 할 것 없이 소란을 피우며 직원들의 근무와 다른 수용자들의 생활을 방해했습니다. 어느 날 지간테 씨가 저와의 면담을 마치고 자신의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수용자의 감방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본 지간테 씨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수용자는 즉시 소란을 멈추고 "제 이름은 조르지오 로즈베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지간테 씨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매우 강압적으로 '''"입 좀 닥치게 신경에 거슬리니까.(You need to shut up, you are getting on my nerves.)"'''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수용자가 "예?(Huh?)"라고 대답하자 지간테 씨는 다시 한번 '''"입 좀 닥치라고 신경에 거슬리니까.(You need to shut up, you are getting on my nerves.)"'''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그 수용자는 두 번 다시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 빈센트 지간테의 담당 [[교도관]] 크리스토퍼 섹스턴과 담당 간호사 샤론 브라운이 얘기했듯 교정시설에서의 지간테는 일반 직원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반면 정신과의사의 진찰을 받을 때면 스스로 고립되려 했으며 몇몇 의사들의 조사에 적대적이었다. 실제로 지간테의 정신질환자 연기를 2년 동안 관찰한 교정시설의 정신과의사는 '''"지간테 씨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수년간 '미치광이 연기'를 지속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스스로를 가장 교활한 범죄자 대열에 올려놓습니다.(Mr. Gigante's case is truly fascinating, his ability to sustain his 'crazy act' over many years places Gigante in the ranks of the most cunning of criminals.)"'''라고 말했다. 교정당국의 기록에 따르면 지간테는 처음 수감된 1997년 8월에 "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라고 멀쩡히 얘기했지만 12일 뒤 태도를 바꿔 "밤중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뮤지컬을 공연하러 저를 찾아왔습니다."라고 정신 나간 듯 얘기했다. 1998년 4월엔 "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하느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쁜 사람이 하는 나쁜 말도 가끔 듣습니다."라고 정신 나간 듯 얘기했다. 1999년엔 "외람되게도 전 당신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어떤 대화도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또 다른 심리검사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 여전히 형기를 채워야 하니까요."라고 멀쩡히 얘기했고 휴가에서 돌아온 간호사에게 "안녕하세요 마샤 씨. 어떻게 지냈어요?"라고 친근하고 멀쩡하게 말을 걸었지만 얼마 뒤 태도를 바꿔 샤워와 면도를 거부하고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한 혐의로 교정당국을 고소했다. 2002년엔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전 누구에게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이에 정신과의사가 그의 전과를 지적하자 "그것이 무엇이든 전 결백합니다."라고 멀쩡히 대답했다. 2003년엔 "[[사탄]]의 야간 방문으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라고 정신 나간 듯 얘기했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뒤 지간테는 연방법원에서 자신의 정신질환자 행세가 모두 거짓이었다고 인정하지만 그 후에도 그의 오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년의 지간테는 교정시설 내 의사를 비롯한 직원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주로 각자 가족들의 안부를 묻거나 자식(손자) 교육에 관한 견해를 나누었다. * 연방교도소에서 빈센트 지간테와 친분을 쌓은 [[시카고]]의 젊은 마약왕 제임스 킨(지미 킨)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시카고 경찰서장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우수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하여 암흑가에 투신했다. 단기간에 거물 마약상이 된 킨은 연간 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시카고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독자적인 마약왕이 되었다. 하지만 1996년에 불과 17살의 나이로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년 뒤 그를 기소했던 연방검사가 찾아와 20명이 넘는 소녀를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래리 홀의 신뢰를 얻어 그의 자백을 이끌어내면 형량을 감형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당시 연방검사는 홀에게 제기한 1건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데 성공하여 그를 구속해놓은 상황이지만 물증이 부족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민하던 킨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비밀 임무를 위한 위장 신분으로 홀이 수감 중인 연방교정의료센터로 이송을 갔다.[* 홀은 [[정신질환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연방교정의료센터에서 복역하고 있었다.] 새 시설로 이송된 킨은 자신의 비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홀의 주위를 맴돌며 그와 가까워질 기회를 노렸고 때때로 경호원처럼 보이는 부하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었던 마피아 두목 지간테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간테의 부하들이 킨을 찾아와 그를 지간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이윽고 킨을 대면한 지간테는 대뜸 '''질문 하나 하지, 자네는 왜 영아살해범 따위와 어울리나?(Lemme ask you a question, Why you hangin around with them Baby Killers?)'''라고 물었다. 이에 당황한 킨은 홀이 영아살해범인지 몰랐다고 변명했다. 이후 킨이 3/4 이탈리아 혈통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간테는 그를 부하로 거두어주며 아침식사, 카드게임, 보체 등을 그와 함께했다. 한편,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과의 친밀한 관계는 킨의 시설 내 위상을 드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홀의 자백을 이끌어내야 하는 그의 비밀 임무에는 큰 지장을 주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과시간 동안 지간테의 곁에 머물러야 했던 킨은 홀 같은 저급한 범죄자들과의 접촉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무 완수를 위해선 일과가 종료된 뒤에야 잠시 시간을 내 서로의 감방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끈질기게 홀의 자백을 이끌어낸 킨은 비록 피해자들의 시신을 찾는덴 실패했지만 수사기관에 큰 공헌을 한 사실이 인정되어 약 17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1999년에 출소할 수 있었다. 그는 2010년에 [[https://www.amazon.com/Devil-Fallen-Dangerous-Bargain-Redemption/dp/0312616945|악마와 함께: 타락한 영웅, 연쇄살인범, 그리고 구원을 위한 위험한 거래]]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했고 이 책을 원작으로 2022년에 [[Apple TV+]] 드라마 [[블랙 버드]]가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엔 지간테 역시 등장한다. 작품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이야기가 약간 각색되어 실화와 다소 차이가 있다.] * 상술한 [[https://i.pinimg.com/originals/c9/25/48/c925486d0171c01409d79a019b433fd4.jpg|안토니오 카포니그로]] 살인사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빈센트 지간테는 1980년대 초반 [[필라델피아]] 패밀리 내부 항쟁에 개입했다. 한편, 2000년에 정부 측 증인이 된 필라델피아 패밀리 지부장 피터 카프리오에 의하면 당시 수감 중이었던 지간테가 1999~2000년에도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대담한 계획을 승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카프리오는 1990년대 필라델피아 마피아 항쟁의 최종 승자가 되어 필라델피아 패밀리를 장악한 두목 [[:파일:조셉 메를리노.jpg|조셉 멀리노]]를 축출하는 뉴욕 마피아의 계획에 자신이 가담했다고 밝혔는데, 그는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파일:A.p.jpg|앤서니 프로토]],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파일:L.l.jpg|로렌스 리치]]와 공모하여 당대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파일:조셉 리감비.jpg|조셉 리감비]]가 포함된 멀리노의 측근 3명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지간테와 [[존 고티]]를 위시로 한 뉴욕 마피아 수뇌부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얼마 뒤 필라델피아의 [[슬롯머신]] 사업을 노리는 뉴욕 마피아의 계획이 리감비에 의해 좌절되자 뉴욕 마피아 수뇌부에선 기존에 수립한 3인 제거 계획을 재추진하기 시작했고 계획이 시행되기 직전에 카프리오가 다른 범죄 혐의로 FBI에 체포되면서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 카프리오는 만약 계획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면 자신이 멀리노의 세력을 축출하거나 흡수한 뒤 뉴욕 마피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새로운 두목이 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리감비 등 자신이 살해할 예정이었던 대상자들에 대해 "그들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그게 마피아의 방식이니까.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라고 얘기했다. * 뉴욕 포스트에 의해 '우리 도시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곳 중 하나'로 묘사된 레스토랑 [[http://www.raosrestaurants.com/index.html|레오's]]는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같은 유명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러키 루치아노]], [[존 고티]] 같은 거물 마피아들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레오's 측이 낸 광고 중에는 '지금까지 오직 성공한 남자들만(원문으로 '''Made men''', 마피아 정규조직원을 뜻함) 우리 레스토랑의 테이블을 잡을 수 있었다'라는 문구가 있다. 즉, 레스토랑 측에서도 의도적으로 마피아 이미지를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https://i.pinimg.com/originals/1d/8f/91/1d8f911a6f686408ed702703694e5752.jpg|레오's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마피아 고위 간부와 노동조합 고위 간부의 모습.]] 과연 이런 명소이다 보니 이곳의 지정석을 두고 거물급 마피아 간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오랫동안 레오's에 주말 지정석을 갖고 있었던 루케시 패밀리 지부장 [[https://i.pinimg.com/originals/0c/f8/ef/0cf8ef5935721116a97213198bfcc973.jpg|앤서니 바라타]]는 1993년에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된 뒤에도 자신의 권리를 잃지 않아 그의 대리인과 지인들이 계속 지정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2001년에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https://i.pinimg.com/originals/51/eb/33/51eb332842989fbe638bffdddfd418a9.jpg|존 아르디토]]가 바라타의 지정석을 뺏기 위해 제노비스 패밀리 고위 간부 3명 [[:파일:Ernest Muscarella.jpg|어니스트 무스카렐라]], [[도미닉 시릴로]], [[리보리오 벨로모]]의 지지를 구해오라고 피터 펠루소 변호사에게 지시했다. 당시 수감 중이었던 벨로모는 연방교도소 접견장에서 만난 펠루소가 아르디토의 지정석 분쟁을 언급하자 어디 그런 사소한 문제에 자신을 끌어들이느냐며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교정시설에서 제노비스 패밀리를 관리하던 두목 빈센트 지간테가 이런 작은 분쟁에도 개입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런 동생을 대신해 일상적인 조직 관리를 맡고 있었던 두목 대행(Acting Boss) [[:파일:Mario Gigante.jpg|마리오 지간테]]가 분쟁에 개입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중재자가 된 마리오 지간테는 자기 패밀리 소속인 아르디토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대신 바라타의 지정석을 약 2개월 뒤 출소하는 다른 루케시 패밀리 고위 간부에게 이만 양도하라는 비교적 균형 잡힌 결론을 내림으로써 양측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했다.[* 이후 [[췌장암]]에 걸린 아르디토는 2006년에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지만 보석으로 풀려났고 얼마 뒤 사망했다. 바라타는 약 19년의 복역을 마치고 2012년에 출소했다.] * 2001년 [[연방수사국|FBI]]는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들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전현직 패밀리 지도자들인 [[:파일:Philip Lombardo.jpg|필립 롬바르도]], [[앤서니 살레르노]], 빈센트 지간테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를 도청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90세의 행동대원 [[https://i.pinimg.com/originals/40/81/e3/4081e3700fe620e976f057c85706906e.jpg|앨버트 파치아노]]도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대화는 살인을 암시하는 심각한 주제로 이어졌는데, 고령의 파치아노가 자신이 직접 살인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위 간부 [[https://i.pinimg.com/originals/90/04/5f/90045f1e757f1fe4e81a331afa09c7e0.jpg|조셉 지토]]가 위험한 작업은 젊은 조직원들에게 맡기라고 하며 만류했지만 파치아노는 전혀 굴하지 않고 "은퇴는 없소. 오늘 당장이라도 패밀리를 위해 살인을 저지를 거니까."라고 대답했다. [*앨버트_파치아노 1910년생인 파치아노는 165cm의 키에 평범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말년의 그는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로 착각할만한 외모였지만 실상은 60년 넘게 제노비스 패밀리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한 베테랑 마피아였다. 1970년대 후반에 공갈 혐의로 약 11년간 복역한 뒤 1989년에 출소한 파치아노는 상술한 일화로 알 수 있듯 불같은 성격의 폭력배로 여겨졌다. 실제로 파치아노를 미행한 FBI 요원은 그를 '90대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로 묘사했는데, [[플로리다 주]]의 카지노에서 휠체어를 탄 덩치 큰 사람이 실수로 파치아노와 부딪칠 뻔한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사건이 벌어지자 파치아노가 무서운 표정으로 상대를 쏘아보면서 사과를 받아냈다고 한다. 그 현장에 있었던 FBI 요원은 파치아노의 표정을 직접 본 사람으로서 만약 상대가 잘못된 대처를 했다면 현장에서 머리가 쪼개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2006년에 파치아노는 강도돈세탁은행 사기 등의 범죄 사업을 관리한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 이듬해 97세의 나이로 가택연금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4년 뒤에 사망한다.] * 2004년 마피아 수사를 하던 [[연방수사국|FBI]]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패밀리(제노비스 패밀리)는 다르다.'라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그들 생각이 맞다. /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두목(빈센트 지간테)뿐이다. 반면 이 사람들(감비노 패밀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체 조직원들이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파일:Prisco_headshot.png|안젤로 프리스코]]의 육성을 포착한 사례가 있다.[[https://www.cosanostranews.com/2019/01/genovese-capo-angelo-prisco-wiretap.html?m=1|#]] * 2005년 연매출 1억 8600만 달러를 달성한 워스건설사(Worth Construction)가 수십 년 전부터 빈센트 지간테의 제노비스 패밀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지적이 나왔다.[[https://www.villagevoice.com/2005/11/22/mobs-thruway-detour/|#]] * 본인을 빈센트 지간테의 사촌이라고 밝힌 사람이 지간테에 대해 짧게 얘기하는 2009년도 영상이 있다.[[https://youtu.be/phQKIRQUWo0|#]] 영상 속 남자는 과거 지간테의 아지트였지만 지금은 폐쇄된 [[https://i.pinimg.com/736x/29/f4/2e/29f42e77c5a20a1a6f04f12df67b618a.jpg|트라이앵글 사교클럽]] 건물을 방문하고 1980~90년대에 제노비스 패밀리와 지간테가 누렸던 막강한 권력과 부하 조직원들이 지간테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할 수 없어 자신들의 턱을 만졌던 일화 등을 얘기하고 있다. * 의외로 빈센트 지간테에 대한 이웃 주민들의 평판은 좋은 편이었다. 한 여인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우 화려한 사람이었어요. 거리에서 지간테와 마주치면 그가 먼저 모자를 기울여 저한테 인사하곤 했지요."라는 증언을 남겼다. 특히 지간테의 아지트였던 [[https://i.pinimg.com/736x/29/f4/2e/29f42e77c5a20a1a6f04f12df67b618a.jpg|트라이앵글 사교클럽]]을 타인이 인수하여 2011년에 찻집으로 재개장하자 이런 변화를 반기지 않는 주민도 있었다.[* 찻집 주인은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름다운 마루와 벽화 등 지간테의 몇몇 인테리어는 그대로 놔뒀다.] 뉴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 응한 어느 시민은 "원래 그곳은 마피아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듯한 장소였어요. 이제 바질을 파는 꽃집을 보니 좀 우스꽝스럽네요. 저는 그들(마피아들)이 그리워요. 그 사교클럽을 드나들던 건장한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모두 마피아 영화 속 배우 같았죠."라고 증언했다.[[https://nypost.com/2011/04/20/mobsters-clubbed/|#]] 실제로 고리대금도박 등 마피아가 일상적으로 관장하는 범죄 사업이나 그들이 행하는 불법 리베이트입찰 조작파업 조종 등은 주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거기다 마피아는 그 나름대로 무분별한 스트리트 [[갱스터|갱]] 범죄를 억제하는 일종의 [[질서 악]]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가까운 주민들은 마피아가 진정한 거악이라는 인식을 잘 못하는 편이다. * 2011년 취재에 의하면 지간테 가문 구성원들은 빈센트 지간테의 생전 영향력으로 여전히 뉴저지 주 항구에 위치한 여러 합법적인 항만하역사 및 항만노조의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억대 연봉들을 받고 있는데, 도합 2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https://www.huffpost.com/entry/gigante-family-earns-near_b_783355?guccounter=1&guce_referrer=aHR0cHM6Ly9lbi53aWtpcGVkaWEub3JnLw&guce_referrer_sig=AQAAAAr8zi17g-kvF-c7aQ4Lb6-KluAR-bCHPtzoBo584bU8cR5TvpiD8hhH4h153zxzjUy57oFEa1-7OwdyPA22IG5J2Iyx5vKP6eLd1wjLwj4fjXd9wYLs1_aJ_qihILg56VbJGy-rVl46w2HBbmEeAlTzRQj54POVWVun_GqjI1AE|#]] 빈센트 지간테의 사위와 조카는 각각 4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으며 지간테 가문 구성원 11명의 평균 연봉은 17만 5천 달러라고 알려졌다. * 2013년 빈센트 지간테가 입었던 목욕 가운이 뉴욕 시에 위치한 미국 폭력배 박물관(The Museum of the American Gangster)에 전시되었다.[[https://www.cosanostranews.com/2013/02/the-chins-bathrobe-now-hangs-in.html?m=1|#]] * 2014년 2번의 산업재해를 겪고 영구적인 장애인이 된 토마스 케니란 노동자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https://nypost.com/2014/08/11/injured-worker-seeking-compensation-says-mafioso-had-his-back/|#]] 그는 과거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빈센트 지간테를 그리워하며 "만약 지금 그가 제 주변에 있었으면 누군가가 저를 방문했을 것이고 저는 누군가로부터 '케니 씨, 우리가 당신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전화를 받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케니는 1970년 9월에 기계공으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연금을 받을 자격이 되기 전인 1989년에 산업재해를 겪고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고는 그의 코를 재건하고 뼈와 턱의 일부를 확인하는 3번의 성형수술로 이어졌다. 이후 케니는 아내와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부양하면서 혈액희석제와 진통제뿐만 아니라 항불안제와 항발작제를 포함한 다양한 처방약을 매일 복용하며 목발을 짚고 다닐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매달 보상금과 사회보장급여를 합친 1600달러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그는 1970년대에 지간테에게 이틀간 자동차를 빌려준 대가로 무려 500달러라는 큰 액수를 받았다고 밝히며 마피아와 비교해 뉴욕 노동자보상위원회를 평가절하했다.[* 당시 케니는 2대의 자동차 중 어느 것을 빌려줄지 지간테에게 물었는데, 그는 트렁크가 더 큰 것을 빌려달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케니는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에 시신이 담길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 2015년 빈센트 지간테의 아내 [[https://www.gettyimages.in/detail/news-photo/olympia-gigante-wife-of-vincent-gigante-at-the-criminal-news-photo/170751822|올림피아 지간테]]가 사망했다. * 2015년 빈센트 지간테의 손자 필립 지간테가 [[뉴욕 주]]에 위치한 소도시 에어몬트의 군수로 당선되었다.[[https://nypost.com/2015/04/26/mobsters-grandson-elected-mayor-of-new-york-village/|#]] 대부분의 유권자가 지간테 가문의 내력을 알았음에도 그에게 투표했다.[* 사실 [[뉴욕 시]]와 거리가 먼 뉴욕 주 외곽 지역의 대부분은 주로 농사를 짓는 [[공화당(미국)|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에어몬트 역시 공화당 강세 지역으로 필립 지간테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빈센트 지간테의 사생아 [[:파일:A2B992E2-4CCB-433A-8E4C-CD0A69C0312D.jpg|빈센트 에스포지토]]는 과거 아버지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되었다. 그는 2018년에 4명의 제노비스 패밀리 정규조직원(Made Member) 및 추종세력(Associate)과 함께 노동 공갈 혐의로 기소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연방수사국|FBI]]가 에스포지토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황동 [[너클]], 불법 권총 2정, 현금 380만 달러, 수기로 쓴 마피아 정규조직원 명부가 발견되었다.[[https://www.cosanostranews.com/2019/07/late-mob-boss-vincent-chin-gigantes-son.html?m=1|#]] FBI는 압수수색 때 발견된 현금 380만 달러를 제노비스 패밀리가 관리하는 고리대금업 자금 및 구금된 조직원들의 변호사 비용과 영치금으로 쓰이는 '''비자금의 일부'''로 파악했다. 조직범죄 전문가들은 에스포지토가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고 정규조직원 명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수감 중인 전 상담역(Consigliere)의 법정대리인을 위한 자금 지원 방안을 논의해온 점으로 보아 패밀리 간부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자금 지원의 대상인 전 상담역은 가석방 소송을 제기한 [[https://i.pinimg.com/originals/d9/4a/6f/d94a6f60d35fc27914b66b294946d5e6.jpg|루이스 만나(Louis Manna)]]로 추정된다.] 당시 검찰 측 공소장엔 에스포지토가 1200만 달러 상당의 고급 연립주택, 500만 달러 상당의 [[할렘]] 부동산, 주소를 밝히지 않은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적시되어 있었다. 재판관은 판결에 앞서, 재판 도중 45명의 지지자가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탄원서를 받은 뒤 피고인의 열렬한 인물상(Glowing Portrait)을 느꼈지만 피고인이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식품노조로부터 금전을 갈취한 사실이 인정되어 유죄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얘기했다.[* 이 사건에서 제노비스 패밀리와 연루된 노조는 (2013년 기준) 127만 4156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식품상업노동자연합(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이하 UFCW)이다. [[지미 호파]]가 위원장이었던 전미트럭운수조합이 (2020년 기준) 약 250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즉, UFCW도 전미트럭운수조합 못지않은 거대 노조인 셈이다.] 10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불구속 재판을 받은 에스포지토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현금 380만 달러가 범죄 사업으로 얻은 재화임을 인정하고 몰수에 동의한 뒤 2019년에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여담으로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디레오나르도는 에스포지토의 집에서 발견된 불법 권총과 어마어마한 액수의 현금을 보고 놀랐다고 밝혔는데, 마피아들은 수색에 대비해 불법 무기나 범죄수익금을 절대로 자택에 보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과거 자신은 유사시 사용할 합법적인 [[산탄총]] 한 자루와 외출 시 착용할 시계나 보석을 제외하면 그 어떤 물건도 집에 두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빈센트 지간테의 손자 빈센트 파이프는 다른 지간테 가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1995년에 할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식품상업노동자연합(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이하 UFCW) 내에서 주류업을 담당하는 간부가 되었다. 6년 뒤 그는 연봉 35만 달러를 받으며 1500여 명의 노조원을 이끄는 지역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한편, 제노비스 패밀리 내 UFCW 갈취 계획의 선두주자로서 매달 노조 간부들에게 상납금을 받는다고 알려진 지부장 [[https://i.pinimg.com/originals/ce/21/bc/ce21bc437b344bf99a75c7d64a132ede.jpg|존 바르바토]]는 파이프와 상당히 가까웠는데, 실제로 [[연방수사국|FBI]]는 바르바토의 운전기사인 레이먼드 파팔로가 UFCW 간부 존 파지오와 함께 회동을 가지는 모습을 여러 차례 포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이프는 자신보다 고작 6살 많은 삼촌 [[:파일:A2B992E2-4CCB-433A-8E4C-CD0A69C0312D.jpg|빈센트 에스포지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매년 1만 달러의 상납금을 삼촌에게 지급해왔지만 이 상황을 상당히 못마땅해 했고 2015년경에는 상납금을 받으러 온 인물에게 "(만약 돈을 내지 않으면) 내가 살해당하나? 총을 맞나? 작업을 당하나?"라고 따져 물었다. 당시 파견된 인물이 "그들은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끝내 상납금을 받아 갔지만 이 사건 이후 삼촌에 대한 파이프의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어느 시점에 범죄행위가 발각된 파이프는 FBI 측 정보원이 되었고 2019년에 에스포지토가 노동 공갈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을 때 결정적인 증거와 증언을 제공했다. 물론 당시 파이프의 비위사실도 함께 발각되었기 때문에 그는 노조 지역위원장 직책을 잃었고 향후 노조와 관련된 그 어떤 취업도 제한당했다. 이후 주류 판매로 연간 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브레이크스루 음료그룹의 회장 찰스 메리노프가 자신이 파이프를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은 과거 메리노프가 지간테나 지간테 가문으로부터 받은 어떠한 은혜를 갚기 위함일 수도 있고 파이프의 마피아 연줄과 노조 지역위원장 이력이 자신의 주류사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수감 중인 빈센트 지간테를 대신해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을 맡았던 그의 형 [[:파일:Mario Gigante.jpg|마리오 지간테]]와 가톨릭 성직자 및 뉴욕시의원 신분으로 빈센트 지간테를 도왔던 그의 막냇동생 [[https://www.gettyimages.dk/detail/news-photo/father-louis-gigante-brother-of-the-mafia-boss-gigante-news-photo/97264419|루이스 지간테]]는 2020년에도 생존해있다. [[https://i.pinimg.com/originals/9c/c8/d2/9cc8d29a84f9c9e3efb06e44e8f46cc9.jpg|마리오 지간테와 루이스 지간테 형제의 모습.]][*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빈센트 지간테의 조카 루이스 지간테가 운영하는 [[https://www.giganterestaurant.com/|지간테 레스토랑 & 바(Gigante Restaurant & Bar)]]이다.] 85세가 넘도록 정정한 두 사람의 모습은 생전 심장질환에 시달리다 결국 77세에 사망한 빈센트 지간테와 대비된다. 한편, 2021년엔 과거 루이스 지간테가 성경공부를 하는 소년에게 지속적으로 성적인 학대를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https://www.google.co.kr/amp/s/www.nydailynews.com/new-york/bronx/ny-father-louis-gigante-lawsuit-sex-abuse-20210730-hyinumspmbbfbk2u5dugwpxm7a-story.html%3foutputType=amp|#]] 2022년 3월엔 마리오 지간테가 9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같은 해 10월 루이스 지간테가 90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지간테 형제 모두 고인이 되었다. * 빈센트 지간테의 형 [[:파일:Mario Gigante.jpg|마리오 지간테]]의 아들인 [[https://i.pinimg.com/originals/eb/29/76/eb2976ca2a7aee90778ceff9a1495967.jpg|살바토레 지간테]]는 일찍이 제노비스 패밀리에 정규조직원으로 입단했다. 그는 1996년 폐기물관리업계를 갈취한 혐의로 아버지와 함께 기소되어 약 3년간 복역하고 1999년에 출소했다. 이후에도 조직생활을 이어간 살바토레 지간테는 아버지가 은퇴한 뒤 그의 지부장 직책을 계승했다고 알려져 있다. * 2021년 정부 측 증인 출신의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과거 빈센트 지간테와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했다.[[https://youtu.be/v16R4vIJ9h0|#]][* 프란지스는 이미 기존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지간테와의 일화를 소개했지만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직접 업로드 한 경우는 이 영상이 처음이다.] *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https://www.netflix.com/kr/title/81026438?s=i&trkid=13747225&vlang=ko&clip=81426901|말하지 못한 이야기: 죄와 벌 그리고 하키]]는 200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드라마 [[소프라노스]] 속 토니 소프라노 캐릭터의 실존 모델이자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로서 총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25개 폐기물관리 업체를 운영한 사업가 제임스 갈란테와 그가 소유한 [[아이스하키]] 구단 댄버리 트래셔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댄버리 트래셔스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이스하키]] 문서의 아이스하키 관련 미디어 문단 참고.] 본 다큐멘터리엔 빈센트 지간테의 부관이자 [[연방수사국|FBI]] [[뉴헤이븐]]지국으로부터 당대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으로 지목된 [[https://i.pinimg.com/originals/0a/8c/f9/0a8cf90cbc9454fb58361f06c4170bb2.jpg|매튜 이아니엘로]]가 등장하며 마피아와 연루된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과 워터베리시장 같은 정치인의 사례도 소개된다.[[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47/0002336949|#]][* 링크된 기사에선 갈란테가 제노비스 패밀리를 팔아넘기는 대신 형량을 적게 받았다고 설명하지만 그는 이아니엘로를 포함한 그 어떤 마피아 관계자도 밀고하지 않았다. 단지 재판에 가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여 감형 받는 유죄인정을 했을 뿐인데, 이걸 기자가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 2023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https://www.netflix.com/kr/title/81596971?s=i&trkid=14170286&vlang=ko&clip=81713344|갱단 두목이 되는 법: 제멋대로 행동하지 마라]]에서 [[존 고티]]와 대비되는 마피아 두목으로 [[:파일:트리피칸테 주니어.jpg|산토 트라피칸테 주니어]], [[마피아/국가/이탈리아|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와 함께 빈센트 지간테를 언급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